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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Oct 22. 2022

서른 #1

겨울에서 봄

2016년, 부산


1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났다. 똑같은 외모와 성격을 지녔지만 완전히 다른 종교와 가치관을 가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기나긴 싸움도 끝났다. 아버지와 나는 사흘 밤낮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아서 독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당신의 아버지를 당신의 방법으로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을. 모든 일이 정리되고 어젯밤 내 방에 돌아오니 그제야 눈물이 났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일들도 결국은 지나가는 것이 그렇게 서글펐다.


2

하루를 잘 보내고 해가 저무니 이유 없이 문득 눈물이 났다.

슬픈 일은 하나도 없는데.

마음의 일은 언제나 이렇게 갑작스럽고 의문스럽다. 나의 마음임에도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친한 언니의 추천으로 모순을 읽다가 오늘의 이유 없는 눈물에 대해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 저켠에서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양귀자, <모순>


3

"오늘"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마음을 울려서 하루하루가 아까운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밤이면 별다른 이유나 생각 없이 눈물이 난다. 내가 운다기보단 눈이 우는 것 같다.


4

어린 친구와 함께 있으면 그의 해맑음이 부럽다. 한편으론 때 묻은 나의 면면들이 선명해져서 부끄럽기도 하고.

이해하려 들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어서 모든 것이 슬프고 모든 이가 안쓰럽다. 그냥, 사는 게 너무 슬프고 지겨워.


5

스스로를 비하하는 한마디의 근저에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 따위의 말을 듣고 싶은 어떤 기대감이 있다. 실패했던 것을 다시 도전하면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봐 왔던 벗에게 이번에도 안되면 나가 죽어야겠다고 실없는 소리를 했을 때, 그러지 말고 나가서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해맑게 말해주는 것이 좋았다. 마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오직 그 한마디였던 것처럼.


6

밤이 깊다고 하얀 네가 까매지지 않듯이


7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나의 삶은 부끄럽고 이 하루는 부담스럽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흔적을 무엇으로 남길 수 있을까. 


8

그 사람한테 빚진 거라도 있어?

응, 따뜻한 마음을 받았거든. 그것도 가장 절실할 때 넘치도록.


9

마음은 바쁘건만 사용한 지 이 년 넘은 폰은 하염없이 느리고 너를 향한 내 손끝은 허공을 헤매고 있다.

폰이 정신을 못 차리고 툭하면 먹통이 된다.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한데 이것 참 골치 아프다.


10

나의 모든 외가 식구들은 강원도에 있다.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 토박이이다. 열일곱 살 엄마는 강원도 시골 마을에서 낯선 부산 어느 병원에 간호사로 왔다. 난생처음 바다를 보았고 7년 후 아빠와 결혼해 줄곧 부산에 살게 되었다. 엄마보다 세 살 어린 작은 이모 역시 간호사로 부산에 내려와 몇 년간 머물렀지만 이모는 다시 강원도로 돌아갔고 홀로 부산에 남은 엄마는 그렇게 이모를 그리워하며 나를 품었다. 그리고 모두가 놀랄 만큼 작은 이모의 턱선과 입술을 빼닮은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그 사실이 참 좋아서 다른 친척 어른들보다 괜스레 이모에게 더 정이 갔다. 그런 이모가 몇 년 전 대장암에 걸렸다. 발견 당시 이미 말기여서 길어봐야 1년이라고 했지만 몇 번의 사계절을 지내왔는데, 이제는 정말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한다. 좋아한다면서도 멀리 있다는 이유로 이모의 존재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이모가 아프니 한 번이라도 더 들르게 되고 연락하게 된다. 아무 일 없을 때 거기에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당연할 때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11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촛불 같다는 말이 무척이나 큰 힘이 되었다.


12

당신의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에 죽음이 깃들어 있다. 그가 죽기 전, 또 다른 그가 죽기 전 보았던 그것과 꼭 닮은. 당신의 살아있는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예감은 무서우리만치 잘 맞아떨어진다.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사실을 애써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는 살아있으므로 밥을 먹고 웃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번만은. 나의 예감이 보기 좋게 빗나갔으면 좋겠다.


13

삼월의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오래된 나의 만년필을 찾았다. 지난밤 잠들기 전 떠올렸던 만년필이 있을 만한 곳 세 군데 중 어디에도, 만년필은 없었다.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을 그리워했으나 정작 그들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아 서글픈 밤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14

내가 왜 당신에게 나를 설명해야 하지?


15

쉼 없이 몸 여기저기에 탈이 난다. 갈수록 회복이 더디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그러하다. 더딘 회복을 기다리기 힘겨워서 누구보다 나를 위하고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이기적이고 못돼보여도 어쩔 수 없다. 흘려보는 시선보다 나 자신이 중요하니까. 그래 어쩌면 당신도 그랬겠구나 하며.


16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의 대상이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


17

나는 나를 잘 몰랐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바람이 사실인 양 떠들어대고 다녔던 것 같다. 사랑하는 이들을 하나둘 떠나보내고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겨나면서, 나의 양심과 신념을 견고히 다지면서 이전보다 조금 더 나를 알게 되었다. 여전히 100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지만. 헷갈렸던 것을 바로잡고 먹먹했던 마음을 다잡는다.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외면당한다고 해도ㅡ사실상 내가 외면하는 것이겠지만ㅡ어쩔 수 없다.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18

햇살이 깊이 파고든다. 봄이다. 어쩐지 서른엔 봄바람도 무섭다.


19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파도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하늘과 바다가 함께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째서 나는 부산 토박이면서 끝도 없이 부산이 좋은가 궁금했던 적이 있는데 오늘 그 답을 찾은 것 같다. 하늘과 바다를 함께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언제나 가까이 있었다. 당연한 것은 늘 그렇듯 소중하다. 그리고 나는 늘 이러한 사실이 새삼스럽다. 아직도.


20

그를 분명 사랑하는데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혀. 문을 분명 잠그고 나왔는데 누군가 문을 잠갔냐고 물어보면 아리송한 것처럼.


21

지금도 알겠지만 살다 보면 갑자기 희한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들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 없이 하는 일들이 또 의외로 잘되는 법이야. 그러니까 아가씨,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지금처럼 많이 웃어요.


뜬금없는 곳에서 처음 만난 아저씨가 내 눈을 보며 말해주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아저씨 말씀이 옳았다는 걸.


22

발 밑에 새하얀 눈(雪) 이 있다. 티끌 하나 없이 이렇게 하얀 것이 있다니 당황스럽다. 손을 대 본다. 차갑지만 만질만 하다. 그러나 내가 손을 대는 순간 티 없이 깨끗하던 그것에 때가 묻는다. 흐트러지는 모습에 울컥, 속에서 뜨거움이 솟구친다.

난 지금 이 길을 지나가야 한다. 눈을 밟아야 지나갈 텐데 한 걸음도 내딛을 수가 없다. 맑은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이 나의 얼굴을 선명히 비친다. 저편에 있는 나의 얼굴은 나를 삼킬 듯 노려보곤 해서 내 속내를 모조리 들키는 기분 이건만,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저 하얗디 하얀 이것은 무엇이기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으면서 날 부끄럽게 하는가.

깨끗하다고 생각한 나의 손은 눈(雪) 앞에 그저 하나의 오물일 뿐이다. 내 몸을 받치고 선 두 발 역시 눈(雪)을 더럽히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내가 지금 이것을 밟고 지나가더라도, 한 손 가득 눈을 쥐었다 놓는다고 해도 여전히 내리는 눈이 모두 덮어줄 것이다. 나의 부끄러움과 때 묻은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줄 것이니, 어느새 볼을 타고 내려 바닥으로 흩뿌려진 눈물 몇 방울쯤은 정말로 괜찮은 것이다.


<글쓰기 좋은 질문>이라는 책에서 '61. 당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보았다. 왜 눈물이 나는 걸까.'에 대한 나의 대답.


23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란 인생.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기에도 순간은 충분히 벅차다.


24

거짓된 감정과 거짓된 말은 결국 들통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 알 수 있다. 나는 오늘 한 사람에게 그동안 거짓말을 해왔노라고 고백했다. 스스로가 이 사실을 안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뒤따르는 원망을 감당하는 것 또한 내 몫이다.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후회할지 그때는 몰랐다.


25

그렇게 생각을 해도 생각이 짧다.

많이 한다고 해서 길어지지도 깊어지지도 않는다.

오늘도 이러구러 핑계를 대는 어리석음.


26

봄밤 풀냄새가 코끝을 스치면

떠오르는 첫사랑의 추억에

조금 더 코끝에 오래 머물길

잡으려 잡으려 애써보지만

금세 비에 젖은 여름밤의 풀냄새.

하나의 계절만큼 멀어진 첫사랑을

우산에 맺힌 빗방울에 실어 보내고

나의 걸음을 걸으면 어느새

가을밤 낙엽 사각거리는 소리.


27

젊은 날의 내가 맞이할 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중은 기약할 수 없으므로 오늘도 후회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야지.


28

진심은 통한다고 믿어왔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사람에게 몇 번 데고 나니 지금 저 사람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눈빛과 표정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하다. 꿈에도 몰랐던 다른 세상을 한번 갔다 오면 내가 살던 세상도 달라지는 법이다.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기에 점점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오래된 내 사람들이 아니면 자꾸 도망치고 싶다. 인생 선배들이 인간관계에 대해 충고해주던 말들을 이제는 내가 하고 있다. 잘 이해되지 않던 그 말들을 또한 아직 이해하지 못할 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내 모습이 슬프다. 그러나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사람을 여행하고 싶다. 아직 만나지 못한 내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그 일 퍼센트의 가능성을 위해 또 떠날 것이다.


29

아기 때부터 물고 빨고 쪽쪽대던 조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목소리도 변하고 수염도 거뭇거뭇 나는 것이 영락없는 남자인데도 내 눈엔 아기였던 녀석이 호주 홈스테이를 다녀온 언젠가부터 만나기만 하면 와락 끌어안고 "사랑해, 고모" 해준다. 일 년에 한두 번인데도 그 따뜻함이 얼마나 큰지.

내가 나를 안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온기가 그리운가 보다.


30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부터 붉게 넘어갈 때까지 한 장소를 맴돌았다. 웨딩사진 찍는 사람들 세 팀, 어마 무시한 장비를 뽐내며 사진 찍는 일행 등이 쉼 없이 앞을 오갔다. 

웨딩 촬영팀은 셋이 뚝뚝 흩어져 있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일명 '사진사'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모두 같은 지점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해가 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주말 경주에 가서 다시 생각했다. 모두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각도로 찍는 사진을 나는 똑같이 담지 말자고. 차라리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것을 보고 사색하고 의미를 찾는 일이 좋아서 사진을 찍는 거니까. 

굳이 삼각대를 놓고 일몰 때를 기다리지 않아도 바다는 순간마다 아름다웠고 햇살은 내내 따뜻했다.


31

네가 드디어 서른에 꽃피는구나. 내 생각에 니 인생 중 가장 찬란할 거야. 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즐겨.


제주로 떠난다고 하자 1년 동안 일했던 카페의 사장님이 해주신 말씀.


32

있을 때 잘하고 후회하지 말기. 스물아홉엔 이걸 참 잘했다. 쓸 수 있을 때 쓰고 읽을 수 있을 때 읽고 찍을 수 있을 때 찍고 갈 수 있을 때 가고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만날 수 있을 때 만나고... 적어도 나의 이십 대 마지막엔 후회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언제나 그곳에 있을 줄 알았던 이들의 연이은 죽음 앞에서 하루는 더욱 소중해졌다. 


33

며칠째 빨래를 한아름씩 돌리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사고 챙기고 있다. 고작 일주일인데 맨날 그러고 산 것처럼 진이 다 빠진다. 스무 살이었다면 그저 신나게 준비했을까. 서른 살이어서 이렇게 생각도 눈물도 많은 걸까.

나는 늘 두 가지를 기도했다. 아마 열일곱 살 때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바르고 좋은 사람이 되어서 또한 바르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멀리 떠나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게 해 달라고.

친구가 많지 않지만 한 명 한 명을 깊게 알고 지낸다. 그들은 나의 사정을 다 알면서도 외면하지 않고 참 오래 기다려주었다.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갚을 수가 없다. 그저 예전의 나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심정을 이해하고 도울뿐, 내 사람들에겐 무엇을 어떻게 해도 모자랄 것이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을 걷고 걸었다. 하나님은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당신의 긴 편지를 읽고 또 읽게 하며 사랑으로 다독여줬고, 나 자신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모난 부분을 둥글게 둥글게 다듬어 이제는 여기도 괜찮다고 하자, 나의 오랜 기도를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들어주셨다.

어느 날 자기소개서를 새로 썼다. 실패로 가득 찬 암울하기 짝이 없는 나의 이십 대를 설명했고, 그중 후회 없이 마음껏 놀고먹은 스물아홉을 풀어놓았다. 왠지 그곳에 내가 가게 될 것 같아서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다했다. 영화 <세 얼간이>의 라주처럼 솔직하고 덤덤하게 면접을 봤다. 연락이 오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계속 그쪽을 향해서 다른 방법으로 가게 될 거라 예감했다. 그러고 얼마 후 시간이 많이 지나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대표이사에게서 온 전화. 내가 지원한 부서보다 더 가고 싶었던 부서에 와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사흘 후 나는 제주도에 살러 간다.

그렇게 고집스럽던 아빠와 날 딸이자 친구 이상으로 의지하는 엄마, 내게 엄마나 다름없는 언니, 필요한 것 있을 때 언제든 연락하라는 친구들, 나의 처지를 알고 아낌없이 주었던 카페 사장님. 하나같이 말한다. 잘 되었다고, 하지만 언제 어떻게 돌아오든 환영한다고. 나에겐 신앙이 있고 내 뒤엔 이렇게나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내가 잘나고 뭘 잘해서가 아니다. 그저 내 이름 그대로 대가 없는 은혜를 많이 받은 것이다. 나보다 풍족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되던 친구는 하는 일마다 안되던 나에게 조금만 더 버티라고 늘 말했었다. 그 말이 많이 떠오르던 요즘이었다. 앞으로도 잘 버텨야지. 기도하고 사랑하면서. 늘 아프고 나약한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겐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34

보름이 모자란 일 년 동안 일한 카페를 나왔다. 웃으며 인사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길을 걷다가 눈물을 훔쳤다. 그곳에서 사계절을 보냈다. 정이 많이 들었다.

일본의 어느 할아버지 바리스타처럼 칠십 노인이 되어도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내리고 싶다는 사장님이 꼭,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오래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이 동네를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여덟 살 어린 귀여운 바리스타 친구도 계속 그렇게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참으로 이기적인 바람이다.


35

늘 가는 병원에서 편두통약 보름치를 처방받고, 늘 가는 안경점에서 안경을 바꿨다. 솔직히 부럽다고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다. 부러울 것도 없고 별스럽게 용기를 낸 것도 아닌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을 부러워하고 대단하다고 엄지를 내밀며 살아왔는지, 그들은 왜 그렇게들 민망해하며 손사래 쳤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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