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화통 터져도 '하다 보니 퍼스널 브랜딩'

하다 보니 브랜딩 1

by 카리스러브 이유미

하다 보니 퍼스널 브랜딩.


마케팅은 1도 모르던 아날로그 40대 아줌마가 하다 보니 브랜딩이 되고 디지털 세상에서 이름으로 살아남게 된 이야기를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저는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도 아니고, 엄청난 인플루언서도 아니에요. 온라인으로 놀랄만한 수익을 내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내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로 인해 결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일로 확장되는 게 신기해서 SNS 덕후가 되어가는 호기심 도전가가 더 맞을 것 같아요. 나를 정확히 알려야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 이 또한 퍼스널 브랜딩의 효과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늦게 온라인 세상으로 뛰어들어 무언가 해보고픈 이들에게 이 글들이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카리스러브'입니다.


20년 12월을 시작으로 온라인 세상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지 1년이 조금 지났다. 온라인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교류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그물망 안에 점을 찍듯 나의 흔적을 하나씩 남기기 시작했다. 그 점은 너무 미세해서 미생물처럼 존재하지만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선물 같은 하루를 경영하는 하루 경영가, 카리스러브입니다.


이 문장이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한 문장이다. 나의 온라인 이름은 "카리스러브".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카리스러브님"

"카럽님"



새로운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 소통의 기쁨, 재미있는 경험들로 온라인 세상에 점점 빠져들었다. 처음 몇 달은 완전한 소비자였다. 다이어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같이 독서모임 하고, 블로그 강의를 듣고, 그림 그리기 챌린지, 미라클 모닝 소모임, 필사 모임, 인스타 모임, 글쓰기 모임, 작가 북 토크 참여, 강의 시리즈로 듣기까지.. 알수록 듣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지 시간표를 짜서 해내기 바빴다.

SNS를 하지 않았다면 들어보지 못했을 단어들. 그런데 가장 많이 듣게 된 낯선 단어들은 사이드잡, 디지털노마드, 파이프라인, 마케팅, 1인 기업이었고 온라인에 집을 짓고 1인 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퍼스널 브랜딩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상품을 판매해 본 적도 없고 상품을 팔 생각도 없었던 나는 마케팅, 브랜드 이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들렸다.


"저 책 출간했어요. 북토크 해요."


책을 출간한 작가님들의 북토크에 참여하면서 책을 쓰게 된 이야기, 힘들게 쓴 책이 세상에 나오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 책들을 읽고, 저자들의 사인을 받고, 소통하면서 문득 "나도 책을 쓰고 싶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일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다.



21년 3월 작가가 되다.


21년 3월. 책을 쓰게 되었다. 책 쓰기 과정에 참여했고 3달을 치열하게 본문을 쓰고 투고를 해서 진짜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쓴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도 놀라웠고, 누군가는 내 책을 손수 구입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시작할 때는 그저 책이 나오기만 해도 좋겠다 싶었는데, 책 쓰기 과정은 생각한 것보다 더 고된 작업이었고, 이왕에 열심히 쓴 책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책 마케팅, 작가 브랜딩. 모두 낯설었지만 글을 쓰는 일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먼저 출간하신 작가님들의 채널도 들어가 보고 강의도 들으면서 일단 나의 일상 이야기, 출간 이야기를 블로그에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내가 쓴 책은 <사춘기 딸과 엄마의 우울증 극복 에세이>였는데 가족 에세이니까 가정의 달, 5월에 맞추어 출간하면 좋겠다는 출판사 의견이었다. 22년 4월로 출간 일정을 잡았고, 책이 출간되기까지 10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 기간 책만 이야기하기에는 나의 소재가 심히 우울했다. 10개월 내내 우울할 거 같았다. 그렇다고 뒤로 미루어 두기에는 나에게는 너무 큰 사건이었다. 결국 책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출간 즈음으로 미루고, 먼저 나의 온라인 영역을 넓히는 생산자의 삶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감으로 알게 된 브랜딩은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는 것. 브랜드가 유명해지는 거였다. 명품 브랜드가 이름만 들어도 정확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처럼. 무엇이든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시작해보자 생각했다. 무료 강의를 해볼까? 단기 프로젝트? 고민 끝에 가장 처음 시도한 것이 "울화통"이었다. <울. 화. 통. 울지 않고 화내지 않고 통 크게 웃는 엄마.> "사춘기 맘들 혼자 울지 말고 속풀이 수다하러 모이자."였다. 취지는 좋았지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모임을 준비할수록 더 어렵고, 처음 해보는 온라인 모임에 상황을 예측할 수 없으니 제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뭐 하나를 만드는데도 무슨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고, 어려운지 산 넘어 산이었다. 일도 일이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마음들이 혼자 널을 뛰었다.


"사람들이 올까?"

"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실수하면 어쩌지?"

"온라인에서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까?"

"괜찮아. 그냥 속 터놓고 이야기하면 되는 거지."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울화통'이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일을 하고 있는가. 후회가 밀려왔다. < 5월 자기성장계획서 >라는 걸 쓰면서 선언을 해버렸으니 안 할 수도 없었다.



나의 첫 온라인 프로젝트

울화통. 울지 않고 화내지 않고 통 크게 웃는 엄마.


2021.6.28. 밤 10시. 디데이를 정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아주 많이 했다. 카드 뉴스도 만들고, 모집글에 정성을 갈아 넣어 며칠에 걸쳐 썼다. 일단 제목은 핫이슈가 되었다. 적어도 그동안의 나에게 보내온 반응에 비하면. 온라인 이웃들의 관심과 응원이 쏟아졌다. 나는 엄청난 기대를 하며 많은 분들이 올 거라 생각했다. 딸에게 부탁해서 울화통 포스터도 만들고, 나름대로 홍보를 열심히 했다.


큰딸이 그려준 울화통 포스터 @카리스러브


드디어 모집이 시작되고, 응원의 댓글은 많이 달렸지만 그 사이 신청 댓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료였는데도 말이다. 결과는 5명.(그때는 이조차 많은 숫자라는 걸 몰랐다. 온라인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 위해 모이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후 깨닫게 되었다.) "단 한 명이 소중하다. 한 명만 오셔도 최선을 다해 수다해보자." 그런 마음이었지만, 워낙 반응이 뜨거웠던 터라 서운한 마음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안되나 생각도 들고, 내가 참 한심해 보였다.


모임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지만 내 열심만 가득했던 모임은 정신없이 끝났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1시간 만에 후다닥 끝나고 나니 허무했다. 오래 준비하고 실행한 일이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이 시작은 내게 큰 배움을 주었고, 이후 진행할 프로그램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프로젝트와 강의를 모집하며 체득한 규칙이 있다. 대부분의 모집은 댓글 수의 10%가 신청하고(울화통의 댓글은 65개. 그중 신청자는 5명. 그중에 50%는 우정의 참가자),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댓글 대비 신청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내게 이것은 엄청난 깨달음이었다. 또 한 가지는 좋은 이미지로 이슈가 되어도 그 안에 담긴 내용물,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는 것.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함께 해주신 분들이 너무 감사하다.


울화통 모집글 : https://blog.naver.com/youme7802/222392249724


요즘도 처음 이벤트를 진행하는 분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 준비를 하셨을까 싶은 마음에 막 감동이 된다. 그래서 댓글도 더 열심히 달고, 공유로 응원도 한다. 첫 이벤트에 응원해주신 분들의 댓글과 응원이 정말 많은 힘이 되었으니까 그 마음을 알기에.






그 이후 블로그 1000명 이벤트, 자기 성장 계획서 함께 쓰기, 번개 특강, 글쓰기 스터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200여 명의 이웃들과 함께 했고 하나하나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들이 쌓여갔다. 이웃들이 써준 후기 덕분에 "카리스러브"라는 이름은 고유명사가 되어, 많은 이웃들의 라인을 타고 온라인의 바다를 유유히 촘촘하게 떠다니고 있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물어오기 시작했다.


"카리스러브님 영향력 있어요."

"카럽님 비공식 인플이잖아요."

"카쌤~ 찐 팬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대답은...


"제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의도한 게 아니라서..

하다 보니..."


내가 뭐라고 팬도 생기고, 선한 영향력이라 말해주고, 내 글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는 분들도 있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브랜딩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면서 "아~~ 내가 퍼스널 브랜딩을 하고 있었구나" 알게 되기도 하고, 나의 실패의 이유도 알게 되고, "아! 내가 퍼스널 브랜딩을 하고 있었구나." 자칫 다른 곳으로 빠질 것 같은 브랜드의 방향을 잡아올 수도 있었다.



퍼스널 브랜딩을 공부하다


며칠 전 브랜딩 책을 읽고 나누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책 제목은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였다.

그 책에서 퍼스널 브랜딩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성과가 곧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든다. 그래서 퍼스널 브랜딩의 방법에 대해 따로 공부하기보다는, 지금 본인이 맡은 일에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성과가 좋고 그것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은 누군가를 통해 알려지게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절대 쑥스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업무 성과를 적극적으로 남에게 알리자.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서도 좋고, 블로그나 브런치 등을 통해서도 좋다. <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성과가 곧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든다. 내가 시도한 작은 도전들이 성과를 내고 그 과정을 기록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딩이 되고 있었다. 모든 프로젝트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1년여를 지속해오면서 지치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계속 나를 알리며 무언가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래의 글이 다시 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브랜딩은 칼로 무를 자르듯 한 번에 깔끔하게 끝나는 일이 아니다. 활동들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고,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한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이 저것을 보고, 저것을 본 사람이 또 무언가에 참여하는 과정 중에서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나처럼 온라인 세상에서 혼자만의 싸움인 것처럼 고군분투하는 분들,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주저하는 분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1번 시도하고 1번 실패하면 실패율 100%지만, 작은 것 10번 시도하고 5번 실패하면 실패율 50%가 된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긴다. 모든 활동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다. 그러니 지치지 말고, 꾸준히 조금씩 시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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