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대를 건너 우성인자를 받는 왼손잡이 공주였다.
나는 후천적 양손잡이다. 학교 입학 전에는 왼손잡이였다. 왕족 집안이라 자부했던 할아버지는 왼손질을 늘 못마땅해 하셨다. 솔직히 "전주 이"씨 치고 왕족씨 아닌 집이 어디 있던가. 밥 먹을 때마다 눈치를 봤다. 왼손 젓가락질을 하면 할아버지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무리 혼이 나도 오른손 젓가락질은 몸에 익지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와 밥을 먹을 때면 숟가락으로 밥만 퍼먹었다. 학교에 들어갈 때쯤 나의 오른손은 또 애를 먹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으로 연필을 부여잡고, 흐물흐물 삐뚤빼뚤 글씨를 쓰다 보면 몇 글자 못 쓰고 손가락이 절여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글씨만 오른손, 나머지 그림, 밥 먹기, 운동, 화장실 업무까지 모두 왼손이다. 가끔 양손에 연필을 잡고 쓰면 왼손 글씨가 더 예쁘다. 방향도 모양도 모두 뒤집어 있으니 평소에는 쓸모없지만, 친구를 사귈 때 신기한 재주로 보여주기는 안성맞춤이다.
얼마 전 아빠와 시골에 갔다. 다시 나온 전주 이씨 왕족 집안 이야기. 아빠는 왕족 학자 집안의 자손들이라 똑똑하다며, 옆 동네 아들이 군수 사무장이라고 부러워했다. 남편은 내가 유명 출판사와 계약을 해서 이제 곧 작가가 될 거니까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다. 학자들이나 책을 출간한다고 생각했던 아빠는 딸의 출간이 제법 자랑스러웠나 보다. 갑자기 유미가 특별한 유전자를 받았단다. 이유는 할아버지만 왼손잡이였고(나를 그렇게 혼내던 할아버지가 왼손잡이였던 것. ), 자식들은 아무도 왼손잡이가 없단다. 세대를 건너 나만 특별히 강한 우성유전자를 받았다고. 그래서 똑똑한거라고. 남편은 한술 더 뜬다. 남편 네는 대대로 공주에게 장가가는 집안이었단다. 그래서 유미랑 결혼했나 보다고. 운전석 남편과 나란히 앉은 아빠는 좌회전 우회전하며 주거니 받거니. 나는 세대를 건너 왼손잡이 우성인자를 받은 왼손잡이 공주였다. 구박받던 왼손잡이, 출세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