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텐트가 떠내려가면 어떻게 하지? ”
아빠는 쓰러진 사업을 일으키느라 늘 바빴다.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단칸방에서 4남매를 혼자 키워내야 했던 여린 엄마는 그 삶이 버거웠나 보다. 하루 걸러 하루씩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 밤이면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골목 어귀부터 들려오는 소리로 어두움에 가려진 집이 하나씩 밝아질 때면 우리 4남매는 창피함을 뚫고 뛰어나간다. 팔다리를 하나씩 잡고 밀고, 끌고, 당기며 집으로 들어와야 했다. 어릴 적 기억은 알알이 상처다. 모래알 같은 상처 속에 떠오른 추억 하나.
여름이면 아빠는 포니 차에 텐트를 싣고 피서를 가자고 했다. 장소는 대단치 않았다. 어느 사람 없는 계곡을 며칠 돌다 마무리 이틀은 한강 변에 차를 세우고, 돗자리를 깔고 여섯 가족이 누워 더위를 피해 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그해 여름도 그랬다. 장마가 오락가락했지만, 날이 맑았다. 계곡의 입구는 나무들로 막혀있었고, 사람 많다는 피서철임에도 아무도 없었다. 장마로 불어있는 계곡은 세찬 물줄기를 만들며 흘렀다. 계곡 가까이 평평한 땅을 찾아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았다. 계곡에서 하는 놀이는 뻔했다. 물싸움. 모은 두 손을 물속에 넣고 빠른 속도로 동생 둘을 향해 쏜다. 작은 손으로 대항하다 눈이 떠지지 않을 만큼 실컷 물세례를 맞은 동생들의 울음으로 끝이 난다. 제법 크고 평평해 보이는 돌을 골라 동그랗게 쌓고, 작은 돌로 사이를 채우고, 모래알로 틈을 메꾸어 웅덩이를 만든다. 허리를 숙이고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기다리다 물고기가 나타나면 재빠르게 손을 뻗어보지만, 매번 피해 다니던 얄미운 물고기를 용케 잡아 웅덩이에 가둔다. 출구를 못 찾아 뱅글뱅글 맴도는 모습을 쌤통이라며 보고 있다.
자신의 1000배는 되어 보이는 집을 짓고 사는 거미를 찾았다. 집이 넓어서 좋겠다. 몸통이 엄지보다 큰데 공처럼 동그랗다. 노랑과 검정 줄무늬가 선명하다. 그 무늬는 긴 다리까지 이어져 있다. 거미 왕 같다. 왕이면 집이 넓을 만하지.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며 지은 집 가운데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으니 평소처럼 나뭇가지로 헤집지 않고 지켜본다. 어제 먹다 남은 나비 날개 반쪽이 붙어있다. 식사를 맛있게 한다. 어린아이의 호기심은 때로 악하다. 잠자리를 잡아 던져보기로 했다. 잠자리 잡기는 선수다. 한 마리를 거미줄에 던졌다. 보기 좋게 딱 붙었다. 거미는 빠른 속도로 다가와 엉덩이에서 하얀 실을 뿜어낸다. 머리, 몸통, 꼬리를 순서로 빠르게 감으면 꿈틀대던 몸짓도 잦아든다. 잠자리 미라 완성. 왕의 식탁이다. 그렇게 여행 내내 우리는 왕에게 음식을 상납했다.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이 한두 방을 떨어졌다. 계곡물이 불어 피서객이 갇혔다는 뉴스를 본 거 같은데. 우리도 집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아빠는 괜찮단다. 텐트는 6명이 딱 붙어 똑바로 누우면 꽉 차는 크기였다. 빗방울은 이제 폭우가 되어 텐트를 흔들었다. 우리는 텐트 모서리를 지지하는 커다란 바위가 되었다. 4명이 모서리를 지키고, 동생 둘은 가운데로. 그래 봐야 옹기종기다. 바닥으로 스며든 물에 엉덩이가 축축해졌다. 칠흑 같은 어둠에 들려오던 세찬 빗소리, 계곡 소리, 나무가 흔들리고 부딪치는 소리. 큰 소리와 함께 텐트로 때리던 장맛비의 무게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빠! 텐트가 떠내려가면 어떻게 하지?”
“괜찮아.”
아빠의 말은 폭우보다 강했다. 그 말을 믿고 밤을 버텼고, 진짜 괜찮았다. 뜨거운 새벽 햇살에 눈을 떠 텐트 문을 열고 맞은 세상은 반짝반짝 빛났다. 엄청난 모험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자의 새로운 아침이었다. 물방울이 알알이 달린 집 위에 당당히 서 있는 거미 왕에게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