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수치심, 언니 눈물이 멈추질 않아.

더 많은 독자를 만나야만 치유될 수 있다.

by 카리스러브 이유미


더 많은 독자를 만나야 치유될 수 있다.


" 언니. 눈물이 멈추질 않아."


자신의 피해를 세상에 꺼내놓는 일은 지독한 수치심과 울렁거림을 치러야 하는 일이고, 그 현기증은 더 많은 독자를 만나야만 치유될 수 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말한 이은혜 편집장님을 비롯한 필자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이 책이 널리 읽히고, 그래서 "오늘도 상처를 숨기고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제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부디 알았으면 좋겠다.

<여섯 개의 폭력 : 학교폭력 피해와 그 흔적의 나날들 > 은유 작가 인스타 소개글


동생이 글을 보내왔다.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단다. 지독한 수치심, 동생을 찔렀다. 무방비에서 만난 그 단어는 순식간에 수치심의 현장으로 모든 감각을 끌고 갔겠지. 그날에 함께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동네 어귀에서 들려오던 엄마의 목소리. 술에 취한 엄마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사 남매는 맨발로 뛰어갔지만 늦었다. 엄마는 길에 누웠다. 깜깜한 밤 불이 하나씩 켜진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두 살 터울의 사 남매는 팔, 다리 하나씩 붙잡고 끌어보지만, 술 취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 팔을 잡고 아픈 허리를 일으키다 구경하던 주인집 딸, 다음날이면 같은 반에서 만나게 될 그 아이의 눈과 마주친 것이다. 깜깜한 밤에도 그 눈동자는 얼마나 선명했을까. 가정폭력인지 모르고 당하고 있는 셋방 사는 같은 반 친구를 보는 눈빛에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학교 가는 1년의 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문 앞에서 마주치기라도 할까 또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렇게 성인이 되어 서랍에 초콜릿을 가득 채우고 3년을 버틴 우울증을 어떻게 다 말로 할까. 이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을 텐데 마흔이 넘어 고작 그 한마디에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또 얼마나 마음이 무너졌을까.


눈물조차 나지 않는 어느 날은 토닥이는 손길에도 상처가 아프다. '상처 받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상처는 토닥임, 안아줌, 손잡아줌으로 사라질 수 있다. 범죄로 다친 상처들은 칼로 온몸을 찌른 듯 상처가 나서 무엇으로도 고쳐지지 않아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지가 않는다. 정말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 지독한 쓸쓸함과 싸운다. 지독한 수치심이라는 말에 덜컹 심장이 내려앉아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울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아는 사람은 감히 '내가 당신의 상처를 이해합니다.' 말할 수 없다.


< 자신의 피해를 세상에 꺼내놓는 일은 지독한 수치심과 울렁거림을 치러야 하는 일이고, 그 현기증은 더 많은 독자를 만나야만 치유될 수 있다. > 목소리 소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목소리를 내고 싶다.> 더 많은 목소리가 들리길 바란다. 나의 목소리, 많은 상처 입은 목소리들을 위해 이 책을 쓰려한다. 세상에 꺼내놓은 상처는 난도질당하고 벗겨진다. 용기마저 상처가 된다. 피 흘리며 절뚝거리더라도 더 많은 독자를 만나고,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통해 공감받는 보편적 상처로 치유될 수 있다.


오늘도 고통의 흔적을 새기고 세상으로 나가는 이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말하지 않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모순이다. 그럼에도 말조차 꺼낼 수 없는 그 마음을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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