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주원아, 주하야!
오늘은 수학여행 가는 날이다. 집을 비우고 출장을 가려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아. 아들딸 끼니도 챙겨야 하고 강아지 산책도 챙겨야 하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굳이, 6학년 담임이 아닌 내가 수학여행 인솔을 가야만 하나 싶다가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픽한 사람들에게도 어떤 의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작년에 내가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의 6학년 수학여행이니 굳이 누군가가 가야 한다면 내가 가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몸도 마음도 피곤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피곤쯤은 조금 뒤로 미루어 놓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제는 교직원 친목 행사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는데 6학년 학생 한 명이 복도를 서성거리고 있더라. 이 시간이면 이미 하교하고 학원에 가 있을 시간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지.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찾고 있다고 했어. 언제부터 어디에서부터 휴대폰이 사라졌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라고 했더니 방과 후 수업이 끝나고 신발을 신고 체육관 앞 계단에서 학원차를 기다릴 때까지 휴대폰이 있었는데 학원에 들어가려고 보니 없었다는구나. 자기 기억이 정확하지 않으니 학원 안에서도 휴대폰을 찾아보다가 안 보이니 학교까지 다시 돌아온 거지. 아이의 기억이 맞다면 학원 차에 떨어뜨린 게 확실해 보였단다. 그런데 학원차량을 운행하는 선생님의 번호, 학원 번호 모두 휴대폰 안에 저장되어 있으니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보였어. 잠시 아이를 불러서 교무실 의자에 앉혔단다. 이 아이와 함께 학원에 다니는 다른 친구 전화번호가 마침 엄마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어서 그 친구에게 학원 원장 선생님과 차량 운행하시는 분 전화번호를 알아냈지.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잠시 후 다시 걸려온 전화로 학원 차량 안에도 휴대폰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어.
망연자실해 있는 아이를 한참 달래줬단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학원 선생님께 학원에 휴대폰이 있으면 아이의 어머니 번호로 전화 한 통 달라고 전해 놨어. 아이가 먼저 나가고 나는 한참 업무를 처리하다가 집으로 왔는데 길에서 집으로 가고 있는 아이를 다시 만났단다. 다 큰 녀석이 길에서 울고 있더구나. 내일이 수학여행 가는 날인데 오늘 휴대폰을 잃어버렸으니, 휴대폰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속상한데 두 배, 세 배로 속상하지 않겠니? 오늘 안에 휴대폰을 찾아야 내일 그걸 가지고 수학여행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속상함에 조급함까지 더해져서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이 날까. 잠시 아이를 달래고 엄마도 갈 길을 가는데 밤새 그 아이가 생각나서 걱정이 됐단다.
내가 걱정한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나. 그런데도 마음이 가는구나. 그 속상한 마음에 공감이 돼. 내가 이렇게 신경을 쓰면 누군가는 쓸데없는 것까지 걱정한다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문제 해결 가능성이 없는 일에까지 에너지를 허비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참 오지랖이 넓다고 말하지. 그런데 사람 사는 세상에는 이런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정서가 기본이 되어 있어도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비율은 정말 얼마 안 되거든. 100명의 사람이 주변 사람의 고통에 공감해도 그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을 돕기 위해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은 10명도 채 안 되거든. 그런데 그렇게 공감하는 마음까지도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간낭비라 생각하면, 100명이 50명이 되고, 50명이 10명이 되고... 결국은 그중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이를 실행에까지 옮기는 사람의 절대적인 수가 1명, 어쩌면 그 이하로 줄어들겠지.
사람 사는 세상, 내가 속해있는 그 세상이 따뜻해야만 나도 따뜻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거야. 타인의 삶에 관심이 줄어들고, 점점 차가워지는 이 세상에서 사람 간의 따뜻한 정을 느끼고 살기 위해서는 나부터 누군가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나의 그 온기가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따뜻해지고, 그렇게 훈훈하게 데워진 공기가 다시 나를 따뜻하게 감싸줄 거라고 엄마는 믿는다. 그러니 행여,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 여기지 말거라. 그 마음에서부터 주변 사람과 사회를 생각하는 공익심이 우러나오는 법이란다.
세상에 따뜻한 온기 나눠주는 하루 보내고 오렴. 엄마 수학여행 잘 다녀올게.
2025. 9. 11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