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태어난 뒤 ‘엄마’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따라 하며 비로소 그 단어를 자신의 말로 온전히 내뱉게 된다고 한다. 아이가 익히는 말속에는 부모의 말투와 뉘앙스가 고스란히 스며든다. 말은 곧 한 가정의 문화가 된다. 다정한 말을 자주 주고받는 아이의 말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이 아이의 집에서는 따뜻한 말이 오가겠구나 짐작하게 된다. 반대로 감정 표현 없이 목적을 위한 말만 하는 아이를 보면, 그 부모 역시 감정을 전하는 데는 서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나의 부모님은 청각장애인이셨다. 사람은 들은 만큼 말을 배우고, 말을 통해 소통하는 법을 익혀 간다. 소통의 가장 핵심적인 능력은 청력이라 할 수 있지만, 두 분에게는 그 능력이 조금 부족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마음의 문이 닫혔던 탓일까. 잘 들리지 않는 귀보다 더 큰 문제는 서로를 향해 굳게 닫힌 두 사람의 마음이었다. 따뜻한 말을 주고받을 여유조차 없던 그 시절, 나는 두 분의 첫딸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사랑이 다른 집보다 부족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내가 평생 들어온 칭찬이라곤 “잘했네.”가 전부였다. 사랑을 표현하는 말을 들은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겸손이 미덕이라 여겨지던 시절, 잘한 일이 있어도 마음껏 자랑하지 못했고, 섭섭한 일이 있어도 솔직히 털어놓지 못했다. 그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나는 소통이 서툰 아이로 자랐다. 본 대로, 들은 대로 자란 결과였다.
가끔, 볼품없이 누추한 집에 아빠 손님이 찾아오기라도 하면 아빠는 없는 찬에 술상을 차려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손바닥만 한 집, 내가 자는 이부자리 옆에 술상이 펼쳐졌고,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방에서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잠들곤 했다. 그러다 새벽까지 아빠의 술자리가 이어지면 잠시 깼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던 기억이 난다.
“우리 딸이 최고지. 공부하라고 잔소리한 적도 없고, 학원 한 번 보내준 적도 없는데 이렇게 공부도 잘하고 장학금도 받아오고. 나는 우리 딸이 제일 좋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아빠의 속마음을, 그날은 술상 위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통해 처음 들었다. 내 귀에는 고백처럼 들렸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전하지 못할, 가슴 깊이 담아둔 진심. 아빠에게 나는 분명 빛나는 자랑거리였고, 그 마음을 가슴에 품은 채 나는 자랐다.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Butterfly – 러브 홀릭스>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 아빠의 취중진담이 떠올라 뭉클하다. 후렴구를 따라 부르다 보면 감정이 차올라 목이 메고, 끝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래서 이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노래방에서 선곡하기엔 너무 벅찬 노래인 데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 울음이라도 터지는 날엔 사연 있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더더욱 남들 앞에서는 부를 수 없다. 결국 출퇴근길 혼자 부르는 노래다. 신나게 따라 부르다가도 어김없이 눈물이 찔끔 흘러나오고 만다. 나에게 <Butterfly>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마음 한편을 살짝 건드리는 추억의 스위치 같달까.
누군가에게 ‘빛나는 존재’가 된다는 것, 나를 한없이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이 세 가지가 다 충족된다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될까. 하는 일마다 힘이 나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하루하루 힘이 나서 모든 것을 여유 있는 시선으로 바라볼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 ‘누군가’가 꼭 타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남의 사랑만 바라보는 일은 마치 내 행복의 열쇠를 다른 사람의 손에 쥐여준 채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일과 같다. 열쇠를 내 손에 다시 쥐는 순간, 비로소 반쪽짜리 인생은 온전한 인생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려 애쓰기보다 스스로를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 조금씩 자신을 더 밝은 곳으로, 더 따뜻한 곳으로 이끌어갈 힘이 있다고 믿는다. 결국 행복은 누군가가 건네는 선물이 아니라, 내가 직접 찾아 나서는 길이라는 걸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되새긴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하이파이브하는 습관이 생겼다. 거울 속의 나와 손을 맞대고 있으면 묘하게 힘찬 응원을 받는 기분이 든다. 손바닥을 펴서 자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했다고 칭찬해 주곤 한다. 그러면 정말로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서 뿌듯해진다.
스스로에게 진심어린 응원을 전하는 나의 말과 행동을 내 아이도 자주 듣고 보며 자라면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자라겠지.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 우리 가족의 문화가 되어 내 아이들도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랑이 넘치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출근길에 이 구절을 반복해 따라 부른다. 나를 위해 여러 번 불러주고 여러 번 듣다 보면 힘찬 응원과 인정에 익숙해져서 언젠가 후렴구를 불러도 담담하게, 울컥하지 않고 완창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