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첫 주식거래

도파민 터지는 거래 후 손절, 정신교육 준비 중

by 강혜진

날씨가 풀려도 겨울바람이 매서운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포근해진 것 같아 방한모자를 두고 자전거로 출근했더니 귀가 꽁꽁 얼었다. 따뜻한 차 한잔하며 몸을 녹이고 있는데 9시가 조금 넘자 휴대폰에 앱 알림이 여러 개 뜬다.


8시 20분, 자전거로 이동하는 도중에 아들에게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학교에 도착해 전화했더니 여권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보호자인 내가 개설해 준 증권계좌에 미성년자인 자녀의 본인 인증 절차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럴싸한 신분증이라곤 없는 아들이, 얼마 전 발급한 여권이 번뜩 떠올라 급히 찾았던 모양이다. 서랍장 어딘가에 있다고 알려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휴대폰 상단에 떠 있는 앱 알림은 모두 증권사에서 온 것이었다.

2000원 조금 넘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작은 기업체의 주식을 매입했다. 2000원 아래로 떨어지자 손절하고 급히 판 아들, 그 몇 분 사이에 오르고 내리는 가격 변동 그래프를 보고 가진 돈의 100%를 투자해 몇 분 만에 엄청난 손해를 본 아들은, 아마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손실을 만회할 만한 다른 종목을 골랐을 테다. 매입, 잠시 후 손절, 매입, 잠시 후 손절.

이게 뭐 하는 건가 앱 알림으로만 어렴풋이 짐작하는 나는 속이 탄다. 아들 녀석은 매번, 내가 예상했던 것을 뛰어넘는 기행으로 아들 가진 엄마는 명이 짧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인 내가 아들 몫의 주식을 사서 보유하는 것으로 이해한 남편이, 미성년자인 아들이 직접 사고팔 수 있는 증권 계좌를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에 펄펄 뛴다. 당장 계좌 해지해라,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점인데 쓸데없는 데 정신을 팔게 하냐. 나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주식에 투자해 보고 싶다는 아들의 제안. 나는 기특하기까지 했다. 엄마, 아빠에게 우량주, 가치주를 사서 증여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주식 살 테니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주식 투자를 위한 기본적인 정보를 좀 알고, 누가 봐도 괜찮을 만한 기업에 투자해 주식 수를 늘려 갈 것이라 생각한 나의 예상을 아들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가고야 말았다.

다행히, 전화해 그만두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아들의 기행은 멈췄다. 당장 전화해 혼을 내고 싶은 걸 삼키고 어떻게 대화를 꺼내 볼까 고민하며 저녁상을 차려놓고 학원 갔다 돌아올 아들을 기다렸다. 닭갈비와 파김치를 뜨끈한 쌀밥에 올려 한술 뜨는 아들을 한참 지켜보다가 입을 뗐다.

“오늘 투자해서 좀 벌었나?”

“2000원 잃었다.”

“얼마나 투자했는데?”

“6만 원 정도?”

“그렇게 도박하듯이 모르는 주식을 사고팔면 어떡하냐? 좋은 경험했네.”

아들의 첫 투자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내고 끝났다. 삼성전자 주식을 사고 싶었는데 자기가 투자할 돈으로는 1주도 사지 못해서 삼화 전기를 샀다나? 그것 말고도 몇 종목을 사고팔았는데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그러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12시에 손절하고 주식은 손 뗐다고.

중2 아들의 첫 투자는 처참히 실패하였으나, 그래프의 색깔에 따라 도파민 터지는 그 찰나를 겪고도, 아니다 싶어 과감히 손을 털고 나온 아들의 인내심에 일단 인정! 그러나 야수의 심장과는 거리가 한참 먼 새가슴의 지극히 보수적인 투자를 하는 나는 저 어린 나이에 어찌 저리 무모한 투자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까 이해가 되지 않는 아들을 두고두고 연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꼰대스러운 잔소리도 한마디 남겼다.

“조마조마하고 기대되는 그 순간, 그때 제일 조심해야 한다.”


도파민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은 기대하던 결과를 만나게 되었을 때보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마음 졸이는 그 스릴 넘치는 순간에 중독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주사위가 멈추어 내가 게임에서 이기게 되는 그 순간이 아니라, 주사위가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그 순간의 스릴, 내가 원하는 결과가 과연 나올까 기대하는 그 순간의 쾌락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딴 사람도 도박을 멈출 수 없고, 돈을 잃은 사람도 다시 도박에 빠져든다는 것.

주식 투자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공부도 하지 않고 그래프가 상승할지 하강할지 들여다보며 몇 초 후의 결과에 배팅하는 건 도박과 다름없다. 나는 아들이 그 도파민 터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스스로 멈추었다는 것에 가치를 두려 한다.

앞으로 살면서 비슷한 순간이 여러 번 올 것이다. 오늘은 투자금이 6만 원에 불과했지만, 앞으로 만날 위기의 순간에 투자해야 할 것은 6억이 될 수도,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아이가 길러야 할 것은 그 모든 위기의 순간에 조금이라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과 자제력이다. 아이는 오늘 그런 위기를 한 번 경험해 보았으니, 그 경험을 토대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깊이 있고 가치 있는 대화를 이어 나가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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