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를 재정의하다

by 강혜진

‘꼰대’, 부모, 노인, 기성세대, 선생님을 비하하는 은어이자 멸칭. 점차 원래의 의미에서 의미가 확장, 변형되어 연령대와는 상관없이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멸칭으로 사용되는 단어 <출처: 나무위키>

어른을 뜻하던 ‘꼰대’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 “내 경험이 맞으니 당신도 이렇게 살아라.” 하고 지나친 간섭을 하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 되었다. 사춘기 아이를 기르는 엄마이자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나는 이르자면 꼰대 아닐 수 없는 사람이다. 먼저 인생을 산 선배로서 자녀와 제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래라저래라 알려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왜 저리 간섭하냐는 오해를 받는 꼰대 역할을 하게 되는 게 교사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꼰대 짓을 하는 대상이 자녀나 학생이 아니라 어른일 때도 있다는 게 문제다. 남편, 친정아버지나 시아버지, 아주 가끔은 동료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꼭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내가 당신과 비슷한 경험을 해 봤는데 그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좋더라고,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꼰대스러움을 들키지 않으려 빙빙 에둘러 이야기할 때가 종종 있다. 이야기해 놓고 집에 와서 이불킥을 하며 왜 그때 안 해도 될 말을 했나 후회할 때가 많지만, 그렇게 후회해 놓고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나는 또 저녁에 퇴근해 후회하고야 말 꼰대의 말을 쏟아내고야 만다.


그런데 나의 꼰대스러움은 사실은 사람에 대한 애정을 기본으로 한다. 아들, 딸에 대한 애정이 깊은 만큼 잔소리가 길어진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부모라면 모두 다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는 학생이 조금 더 잘 성장했으면 하는 애정이 있을 때, 따로 상담하고 학부모에게 연락하고 예의주시하며 한마디씩 더 하게 된다는 걸 가르쳐 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을 거다. 힘들어하는 가족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의 실패담을 굳이 굳이 들춰내며 이렇게 하니까 좋더라 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건, 상대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아는 사람이 많을 거다.


내가 맞고 네가 그르다는 생각으로 가르치려는 사람이기보다는 상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욕먹을 각오로, 오해들을 각오로 해내는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꼰대’라는 칭호를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주변 사람을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애정 담긴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 자기 인생을 애정을 갖고 살아본 사람이야말로, 실패담도 성공담도 자신 있게 조언할 수 있지 않을까!

‘꼰대’ 부정적인 어감을 쏙 빼고,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 삶과 주변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호칭이라고 재정의해 본다.


나는 앞으로도 꼰대 아닌 사람일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이왕에 꼰대가 되려면 세계에서 제일 멋진 꼰대가 되고 싶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애정 넘치는 꼰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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