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회사 전략발표회 준비로 5월은 정말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챙겨본다. 가장 먼저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글 쓰는 일도 다시 부지런히 해보려고 한다.
바쁜 와중에도 유일하게 멈추지 않고 계속한 것이 있었다. 바로 드라마 시청이었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 저녁 80분은 와이프와 함께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을 보는 것이 바쁜 일상 속 유일한 낙이었다.
이 드라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슬의생 감독을 맡았던 신원호PD가 총괄디렉팅을 맡았다. 중간중간 카메오로 슬의생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슬의생과는 다르게 언슬전은 레지던트 과정에 있는 전공의들의 성장기에 기반하여 스토리를 풀어간다. 산부인과 전공의 1년 차 4명이 이 드라마의 메인 주인공으로 병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무겁지 않게 전달한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조준모 교수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조준모 교수는 부인과 교수인데 현실에서 흔히 볼 법한 인물로 후배들에겐 항상 짜증과 심술이 가득하지만 선배나 환자들에겐 세상 젠틀한 사람으로 무장한다. 전형적인 강약약강 스타일이다. 전공의들은 매번 수술 스케줄을 제대로 못 챙긴다고 구박을 받고, 전공의가 자체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여 새벽에 전화를 해서 구박을 받는다. 구박받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다 억울한 느낌이 든다. 다들 각자만의 이유가 있는데 조준모 교수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조준모 교수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 우리의 회사생활이 오버랩된다. 내가 생각할 때는 별거 아닌 것들이 상사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도 있고 그 반대인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회사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대화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나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해서 서로의 의견을 원만하게 조율하는 것이 일터에서의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터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정말 쉽지 않다. 우선 상대방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대부분의 후배들은 비슷한 질문을 두 번 세 번씩 하는 건 자칫 잘못하면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더군다나 그 상대방이 조준모 같은 사람이라면 두 번 질문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생각보다 우리의 선배들도 생각이 확고하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시작부터가 어렵다.
어려운 난관을 뚫고 상대방의 생각을 파악했다 하더라도 그다음 나의 생각을 확실하게 전달하여 의견을 조율하여 일을 매듭짓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다. 일터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나의 생각을 상사에게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는 분위기는 모든 회사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회사일 것이다. 그게 잘 되는 회사면 인사팀이나 기업문화팀에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 문화가 자리 잡혀 있는 회사라 할지라도 저연차 후배 직원의 의견은 깊이나 방향성 측면에서 선배직원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감동과 재미있었던 요소들을 써보려고 했는데 결국 회사와 연관된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매일 아침 답 없는 질문을 안고 오늘도 출근한다. 드라마 속 전공의들이 버티듯 나도 해보고 버티며 언젠가는 슬기로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