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낮잠 자고 첫째는 놀고 있는 주말이었다. 남편과 나는 말다툼을 했다. 며칠간 있었던 갈등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터져나온 거였다. 실랑이를 하면서 원래 계획했던 외출 따위는 하기 싫은 기분이 되었다. 우리가 나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아이는 울었다.
나는 급히 수습했다. "엄마 아빠가 싸우니까 긴장되고 불안하지?"라고 묻고, 아이는 그렇다고 했으며, 결국 외출을 했다. 그러나 이미 아이 기분도 상했을 거란 생각에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아이 마음이 걸렸다. 잠자리에 누워 아이랑 이야기를 했다. 그때 아이는 말했다.
"엄마는 안 한다고 하고 아빠는 하라고 하는 게 싫었어요. 엄마 아빠가 계속 그렇게 하면 같이 안 살고 싶어져요. 저 스무 살 때도 그러면 집 나갈 거예요."
우리가 언성을 많이 높이지도 않았는데,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듣고 싫다고 해서 놀랐다. 게다가 엄마랑 결혼하고 싶다며 언제나 같이 살자고 하던 아이였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일은 이미 벌어졌지만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너도 싸울 때 있지? 어른도 마음에 안 들고 싸울 때가 있어. 하지만 화해하는 게 중요한 거야. 아까 엄마가 아빠한테 사과하는 거 들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러다 지진 나고 땅이 흔들리면 어떡해요. 엄마 아빠가 싸우는 중에요."
"그럴 일 없어."
"아니에요. 그래도 땅이 흔들리고 부서지고 끊어지고 그러면 어떡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를 보호해주겠다고 안심시켜주었지만 아이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문득 아이의 걱정은 지진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싸우니까 땅이 흔들리는 거 같았니?"
"네……."
아이는 엄마 아빠의 싸움에서 땅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나보다. 엄마 아빠가 아이에게는 세상이고 우주다. 아이가 점점 내가 그어준 세계를 벗어날 때마다 그 사실을 조금씩 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다. 걱정스럽고 불안했던 마음을 실컷 이야기하고나니 아이는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그 땅은, 다시 붙을 거예요. 으히히히."
충분히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은 아이는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금세 아이 마음이 풀어져서 신기하고 감사했지만,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많다. 배려되지 않은 부분 때문에 힘들 수도 있고, 끝까지 내 의견을 주장하다보면 싸울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불안해한다면 과연 어디까지 나를 주장해야 할까. 어디까지가 포기하지 않아야 할 나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서로를 위해 양보해야 할 영역일까. 풀이과정만 해도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문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나 역시 불안 속에서 자랐다. 우리 부모는 한 번의 다툼이 아닌, 지속적인 갈등 속에 살다 헤어졌다. '가정불화'라고 쉽게 뭉뚱그려 말하지만 당사자인 나에게는 전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에게 같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막상 결혼해보니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한다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좋은 예를 보고 자라지 않아서 더 힘겨웠다. 그런데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들으니 더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졌다. 쉬운 게 하나 없다. 내 삶 하나도 어려운데 여기에 아직 작고 여린 삶들이 겹쳐진다는 게 더욱.
혼자, 혹은 둘이었다면 그 관계 하나만 고민하면 됐을 일이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관계는 복잡해졌다. 이중 삼중의 관계가 생겨났다. 엄마 스스로만 행복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환경과 관계의 틀을 마련해주어야 하기에, 엄마의 관계방식을 배워갈 것이기에, 엄마는 더 유연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성장할 기회를 준다는 말이 맞다.
아이에게 단단한 땅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전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생각 끝에 내가 먼저 단단하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엄마 마음 속 깊은 안정감을 발판 삼아 아이들이 자라가도록, 지금처럼 아이의 마음을 읽어줄 여유가 생겨나도록. 먼저 내 불안을 다독여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