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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 Jul 27. 2020

피와 욕망의 역사가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유

그들도, 지금의 우리들도

<야연>이라는 중국 영화가 있다. 2006년에 개봉한 이 중국 사극 영화는 햄릿을 중국 이야기로 오마주하여 호평을 받은 영화다. 어떤 관객은 중국말의 절제된 표현이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했고, 어떤 관객은 너무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고도 했다. 또 어떤 관객들은 결말에 대해 분분히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를 개봉 당시부터 너무나 좋아해 지금까지도 계속 보고 있는 영화다. 오늘 이 글에서는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 그리고 이 글에는 영화 <야연>의 일부 스포일러를 담을 예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나 이 영화를 볼 사람은 살포시 뒤로가기를 눌러 빠르게 이 페이지를 벗어나, 영화를 감상하고 다시 돌아와 주시길 부탁드린다.



<야연>의 이야기


1. 배경

<야연>은 서기 907년의 당나라 몰락 이후 혼란스러웠던 중국의 역사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기 9세기, 당나라는 '천명을 잃었고', 여러 왕국이 쟁투하는 시절이 찾아왔다가 송나라가 등장했다. ... 가계의 생산 활동이 산업적 규모로 증가했다. 각 가정이 이전에는 가장의 부인과 자녀가 맡았던 일을 처리할 일꾼을 고용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의 증표가 되었다. 사실, 한 가정의 여성들이 노동 능력을 잃는 것이 고귀한 신분의 증표가 되었다. ... 상류층 가정은 소녀들의 발을 붕대로 묶는 풍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전족 풍습 때문에 소녀들의 발뼈가 부러졌다). 붕대로 발이 묶인 소녀들은 기형적으로 작고 제구실 못하는 발을 지닌 탓에 평범한 노동도 못 하는 여성으로 성장했다. 송나라 시절, 중국의 최상류층 남자들은 그 부러진 발을 아름답다고 여겼다. 그것은 문화적 힘과 풍요로움의 어두운 면이었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책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의 내용과 어느 정도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는 듯이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왕족 가문으로 상당히 사치스러운 삶을 산다. 하인들은 병풍처럼 각자의 자리를 미동 없이 지키고 있고, 왕과 황후의 둘만의 시간에도 그 근처에서 아주 사적인 대화 마저 모두 듣고지만, 마치 물건인 것 마냥 가만히 입과 귀를 닫고 자신의 자리만 지킨다. 영화는 천자라고 일컬어지는 왕권의 실체를 아름다운 미장센과 화려한 색채, 정적인 모습들로 아주 강력하게 내비치고 있다. 이 속에서 벌어지는 시기, 질투, 음모, 배신을 그린 작품이 영화 <야연>이다.


2. 인물

황후 완. 배우 장쯔이.

첫 번째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황후 완이다. 원래는 황태자 우루안의 연인이었다가, 황제의 연인으로 거둬 들여져 우루안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인물이다. 이후, 황제를 시해하고 새로운 왕으로 거듭난 황제 리와 부부 사이가 되어버려 복잡한 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상당히 기회주의적이면서도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 서리 넘치는 한을 지니고 있는 날카로운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황제 리. 배우 갈 우.

두 번째 인물은 전 황제를 시해하고 황제의 자리와 황후 완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황제 리이다. 혼란스러웠던 당나라 이후의 시대적 배경이 그대로 녹아들어간 인물로, 황제의 자리를 사로잡고 전 황제의 아들 우루안을 죽이기 위해 갖은 술수를 쓰지만 이내 우루안을 죽이지 못한다. 극중 황제 리는 우루안에 대한 질투심을 표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강하게 경계를 하는 모습은 계속해서 보인다. 황제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절제되어 있는 인물이며 동시에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이에게는 아주 잔인한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황후 완을 지극히 아끼며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의외의 로맨스적 서사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황태자 우 루안. 배우 오언조.

황제 직위의 전통 계승자 이지만, 연인으로서 사랑했던 완을 아버지에게 빼앗기자 속세에서 물러나 노래와 시에 전념하며 지내던 왕자로 출연한다. 황제였던 아버지가 숙부 리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분노하여 사사건건 황제가 된 리의 만행을 꼬집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다. 이제는 어머니가 되어버린 전 여인 완에게도 서운함을 표하기도 한다. 황제의 오른팔 격인 인 태상의 딸 칭 누의 짝사랑에 완-우루안-칭 누의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우 루안 바라기 칭 누. 배우 저우쉰.

우루안을 지극히 사랑하며 종국엔 완과의 질투심 전쟁의 최후 승자로 남게 되는 인물이다.(하지만 완의 중상모략에 휘말려 안타깝게 죽는다) 햄릿의 오필리아를 오마주한 케릭터로 순수한 사랑을 놓지 않으려 마음을 다해 우 루안을 사랑한다. 끝내 이루지 못하는 사랑 앞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인물로 묘사된다.


3. 이야기 간단정리

이야기는 간단히 요약해서 왕족들의 말로 표현하지 못할 비운의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황제를 시해함으로써 왕위와 황후를 손에 거머쥔 리, 이를 분노의 대상으로 여기며 슬퍼하지만 죽음을 죽음으로써 갚아야만 하는지 갈등하는 우루안, 우루안의 사랑으로 남고 싶으나 황제의 권력 앞에 굴복해 사랑을 숨긴 체 황제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자신의 사랑을 실현시키려는 완, 이들 사이에 우루안을 사랑했다는 것이 그녀 운명의 죄가 되어 죽임을 당하는 칭 누.

나는 이 영화의 엇갈린 사랑, 상처 주고, 상처받고 하는 이야기들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화려한 미장센과 더불어 숫한 역모와 배신속에서 천자라고 일컬어지는 자들도 결국 사랑에 기울고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기구한 운명을 지닌 한낮 인간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점에 마음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화려하지만 그만큼 깊은 어둠도 가지고 있었던 당시의 중국을 보며 인간은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고통과 시련이 있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나름의 철학적 고찰도 하게 되었다.



과거의 찬란한 역사를

되풀이 하는 것으로 부터


책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를 보면 명나라 이전의 찬란했던 중국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데, 당시 핵심적 역할을 한 홍무제가 만들어낸 중국의 서사가 소개된다.


그는 황건의 우두머리였다.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점령한 중국 땅을 되찾는 데 큰 공을 세우지만, 도적의 우두머리였던 홍무제는 예전의 찬란했던 중국을 재건하기 위해 자신보다 뛰어난 지식인들을 자신의 신하로 거느리며 유교에 뿌리를 둔 정치를 시작한다. 그는 어릴 적 너무 궁핍한 삶을 살아왔기에 백성들에겐 조세를 줄여주는 등의 정책을 시행해 민심을 사지만, 기타 국정에 해당하는 여러 정책의 시행 가운데 공포에 가까운 정치를 시행한다. 또한, 무력으로 쟁탈한 왕위였기에 조금이라도 역모의 낌새가 있으면 바로 제거해 버리기도 한다.

홍무제는 농촌 사회를 촌락 단위로 촘촘하게 편성해 각종 행정적 지출을 줄이기도 했다.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운영하는 그 촌락 단위의 주민들 임무 중에는 서로를 감시하며 의심스러운 행동을 관청에 알리는 것이 포함 되었다. 중국인들이 황제를 위해 그 모근 일들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황제가 공포로 도덕 교육을 보충하는 무서운 야수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화려한 당나라 이후의 중국에도 어두운 이면에 있었듯, 홍무제가 이룩한 찬란한 중국역사의 서사에도 공포에 견줄만한 어둠이 있었다.


사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거의 모든 서사가 그랬다 화려함, 진취성, 발전의 이면엔 항상 고통의 서사도 함께했다. 기계문명과 현대 기술발전의 이면마저도 소외당하는 인간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지켜내는 것이, 옛것을 복원하고 이어나가는 것이 가지는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서사를 보고 무엇을 배워나가야 할까?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에 소개되는 ‘복원의 서사’를 읽으면서 황제의 공포정치에서 살아 남기위해 서로를 의심하고 신고해야만 했던 백성들,  <야연>을 보면서 황제의 손가락질 하나, 표정 하나,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의 진위를 알려고 고개를 조아린 신하들과 이루지 못하는 비운의 사랑 이야기 속에서 내가 본 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이 보였다.

황제가 천장을 처다보면, 황제가 무엇이 맘에 안드는지 알아내야 했기에 신하 모두가 필사적으로 천장을 들여다봐야 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도 사람이었다. 천하의 맥을 잇는 절대 왕좌도 인간의 서사극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서사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들 또한 황제이면서 사람이었고, 황후이면서 사랑을 마치다 않는 여인이었다. 그들에게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도덕적인 양심이나 죄책감 등의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서사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체통을 지켜야만 했다.



서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운명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때문에 <야연>의 비극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약 그들이었다면, 비극의 서사를 비틀어 행복한 결말이 되게 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게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주인공들이 온전히 그 당시 중국의 역사적 서사의 일부였기에 치달은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아름답다. 못다 이룬 사랑이 슬퍼서 아름답고, 다 말하지 못하는 그들의 먹먹함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제, 시선을 돌려 내가 처한 현재를 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 어떤 서사에 휩싸여 있는가? 혹시 나도 그들이 느끼고 있을 비극의 서사에 그저 흘러가는 데로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삶이 비극으로 치닫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좀 더 표현하자면, 자본주의사회에서 성실한 노동자로만 살아왔던 내가 진정으로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서, 사회를 윤택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부속품으로만 남지 않고 거기에 내가 원하는 삶의 의미를 부여받은 체 보람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나도 중국 역사의 그들처럼 현재의 거대한 서사의 기류를 이겨내지는 못할 것이다. 때문에 이 서사의 기류에 내 위치를 잘 깨닫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가 넘어짐과 다시 일어섬의 반복이었듯이, 나도 수많은 시도와 노력과 실패를 맛보며 더욱 단단해져서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을 쟁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물론 이것이 누구에게나 수긍될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중국 역사의 이 불편한 진실을 보며 이런 것들을 느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내린 이 결론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나다운 것’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이 생활이 더욱 성장하는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많은 경험을 쌓아가며 나만의 지식과 이야기를 쌓아가야겠다.

극중 황제를 위해 제대로 임무를 다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하들의 피가 강을 피로 물들이는 장면. 그들도 결국 자신의 가족을 위해 희생한 것이다.

잔인한 피와 욕망의 역사가 결국 나와 같은 인간의 것이었음에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 일말의 인간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를 이래서 배우나 보다. 이래서 역사를 알고, ‘내가 아닌 것을’ 알았을 때 오히려 나 다운것을 깨닫는 모양이다.

나는 이것이 영화 <야연>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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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콘텐츠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타밈 안사리 저

영화 <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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