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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May 15. 2018

스승의 날

스승께 아뢸 이야기가 없다. 

없다기보다 넋두리 비슷한 것만 있어서 이야기 '드릴' 수 없을 것 같다. 

해마다 드리던 편지를 드려야 할지 고민스럽다.


누군가의 제자라고 자임했던 자리들을 많이 떨궈냈다. 스승들께 받고, 스승을 따라 해 만든 '나'의 모습을 스승의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영향으로 지금 여기에 이르는 길을 걷기 시작했고, 그 길 위에서 스스로 일궈갔던 수많은 나를 떠올릴 때 괴로워졌다.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두고 누군가의 것이었다고 말 꺼내놓기 어렵다. 그래서 스승께 드릴 나의 이야기들 일부가 사라졌다.


내 스승 중 한 분은 '꿈'을 늘 강조하신다. 지난해 스승의 날에 스승을 찾아뵙기 전에 나와 꿈 사이의 거리를 한 번 재보았다. 꿈에 다가서기도 멀어지기도 했다. 어떤 꿈은 이지러졌다. 또 어떤 꿈은 살면서 생긴 다른 꿈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잊히기도 했다. 꿈에서 가깝지 않은 데 내가 자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스승께 드렸던 편지글에서처럼 ‘꿈’보다 ‘목표’가 익숙했고, ‘이상’보다 ‘현실’이 가까웠으며, ‘상상’ 보다 ‘직시’가 현재를 사는 올바른 태도라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 


무엇을 했고, 이루었다는 것이 이야기를 뼈대를 이루자 할 말이 없어졌다. 다시 스승의 날이 되어 지난 한 해를 떠올렸을 때, 나의 인생에 대한, 나의 인생에 녹아 있는 스승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들은 '결과'에 묻혀 자리를 잃었다.


올해는 편지를 드리지 않을 생각이다. 

올해는 못 드릴 것 같다. 

입 속에 맴도는 이야기들을 꺼내놓지 못하겠다.



2018년을 사는 불초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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