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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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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Dec 10. 2018

초저녁, 짧은 잠.

지난날이 만든 방어기제.


오늘을 삼키려고 200cc 맥주잔으로 다섯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이상하게도 취기가 올랐다. 찬바람을 쐰 탓이었을까, 피로감도 몰려왔다. 이른 잠을 청했다. 


꿈을 꿨다. 꿈에서 지난날이 덮치듯 몰려왔다. 그리고 내 것이 아니었으면 좋을 미래의 암울한 자화상도 어느 미래의 모습처럼 내 것이 되어 찾아왔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꿈속에서 오지 않는 잠을 애써 청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잠에서 깼다. 두 시간쯤 잤다.


마음이 어수선하고 뒤숭숭할 때, 한 잔 술이라도 멀리해야 한다는 평소의 신조를 떠올렸다. 오래된 생활의 원칙을 어길 때 찾아오는 진한 씁쓸함은 지난날 어느 밤의 쓴 맛 나는 경험이 만든 방어기제 같은 것이었음을 잊지 않았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의 시계가 내일을 가리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의 기분을 오늘 묻어둘 수 있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은 어제로 명명하며 새로운 날을 살 수 있다. 길었던 두 시간을 털어내려고 찬 물을 거푸 마셨다. 잠에서 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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