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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Dec 07. 2018

나를 만나는 날.

첫 종강.

2018.9.6. ~ 2018.12.6. 연희관 매주 목요일 세 시부터 네 시.


선생님의 시를 들려주면서 수업을 마무리했다. 결국 평화주의자가 되어주길 부탁했다. '평화'에 담을 수많은 의미들이 있겠지만, 우리의 보이지 않은 손에 "국제정치학"을 들고 있다면, '평화'를 실천하는 삶 말고는 종국적으로 지향해야 할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낭독하면서 들었기 때문이다.

한 학기 동안 수업을 하면서 내 앞의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만났다. 피곤함이 가득 묻은 표정은 내가 전달하려는 지식과 지식을 전달하려는 나의 방식이 모자라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찡그린 얼굴은 나의 사유의 전개도에 쓰인 논리가 흐리거나, 비약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따금 보여주었던 웃음기 어린 표정, 안광을 뿜어내던 표정은 다행히 교감하고 있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나를 속이지 말자던 여러 날의 다짐은 또한 타인을 기만하지 말자는 것임을 생각했다. 그리고 타인을 기만하지 않는 것은 나의 말이 모자라지 않고, 사특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한 학기의 시간은 나를 만나고, 나를 점검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종강을 앞두고 해고 싶은 말이 많았다. 최승자 시인의 청춘의 세 가지를 마음에 담아보길 당부하고도 싶었고, 기형도 시인의 어느 시에서 처럼 백양로 한 귀퉁이에서 플라톤을 읽어보길 권유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마지막은 내가 여기, 이곳에 있게 만드신 내 선생님의 의중-전적으로 내 생각-을 알리고, 내가 선생님을 통해서 본 학문의 단면,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말을 적었고, 실은 그것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여유가 없어서 대강의 윤곽만을 이야기하고 수업을 마쳤다.


그렇게 한 학기를 마무리했다.



<종강의 변 전문>


거의 모든 시간의 시작이 Thomas Hobbes를 떠올리게 했듯이 끝의 시작도 홉스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언어의 효용을 논의하는 와중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잘못된 정의나 정의가 없는 데에 언어의 제 1의 악용이 있으며 여기에서 모든 잘못된 어리석은 교설이 나오게 된다.”


이 수업을 우리가 사는 국제관계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개념과 그 정의를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 시작했다. 그 목적은 결국 이 세계를 오인하지 않고, 교설이 아니라 올바른 이론에 바탕을 두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기 위한 사유를 시작할 출발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수업의 여정은 한편으로 관계적 세계에서 내가 너에게 나의 의미를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꼭 맞는 만큼의 말”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개념을 통해서 현상을 보았고, 또 짧게나마 개념을 휘어 감은 ‘관념’의 자취를 보았다. 결국


"(관념이 질서를 구성한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본질은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이 세계를 보고, 변화시키려고 하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국제관계의 현실인 무정부 상태를 무엇으로 생각하는가, 에 따라 현재의 세계는 바뀔 수 있다. 즉 우리의 세계에 대한 관념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규정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우리가 가진 미래에 대한 사상마저 지배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우리가 당면하게 되는 부족은 필요를 낳는다. 그리고, 그러한 부족이 없는 세계는 우리의 지향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Maslow의 논리를 원용한다면, 우리가 국제정치의 무정부성이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안전과 안정에 목말라하게 되고, 이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의 본질은 “전쟁의 부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홉스적 무정부 상태가 우리가 목격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이고, 그것으로 충분한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설령 그렇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면밀하게 살펴보고, 때로는 기정사실들, 사실은 통념적 지식에 불과한 그것들과 한 번쯤 부딪혀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찰과 검증의 시작은 ‘개념’에 대한 검토이다. 다만, 그것이 반드시 객관적 사실만을 담으려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에 살고 싶어 하고, 우리가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 사실은 우리가 딛고 선 출발점이지, 결코 우리가 통과해야 할 결승점은 아니다. 우리는 개념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가치를 살피고, 오늘 중요한 가치, 내일 중요할 가치를 발굴해야 한다.


시작은 세계에 대한 객관적 관찰이 되어야 하겠지만, 실천을 통하여 닿아야 할 종착지를 가리키는 화살표는 결국 ‘가치’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히, 이렇게 이야기해도 될지 모르겠다. 정치학이 ‘과학’이 되었고, 우리는 그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를 살아가는 일견 ‘과학적 존재’이지만, 여러분의 마음속 '과학'이라는 한쪽 끝 반대편에 ‘가치’라는 무거운 돌 하나를 달아 놓기를 바란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힘이 자유와 권리, 그리고 도덕과 정의를 억누르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교란시키려고 할 때, 그것의 힘과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의 한쪽 편 마음의 방종을 누르는 누름돌은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 시로 마무리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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