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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Sep 02. 2022

쉽지 않았던 밤

외롭지 않기 위해서 걷고 또 걷습니다.

지난밤 무엇 하나 제대로 내 것이라고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시간을 이따금 마주했다. 곁에 둔 것들이 너무나 익숙하지만, 내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안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지식의 실체가 오해로 쌓인 허상이었고, 사랑한다 믿었던 것들의 마음에는 온기가 없었음을 느끼는 순간, 그 순간들이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느 밤 눈에 익은, 그러나 어떤 의미조차 붙여본 적 없던 길 위에서였다.


그 순간, 내가 내 삶에서조차 무력했음을 깨닫게 됐다. 지금껏 무엇도 취하지 못했고, 무엇도 간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삶과 생활의 방향에 대한 확신이 까맣게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꼈다. 함께 공허가 왔다. 그리고 결국 외로움이 덮쳐왔다. 이십 대의 어느 날 외로움이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틈을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활의 틈을 쫓아냈다. 그 후로는 외로움이 거의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외로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외로움이었다. 이십 대의 내게 외로움은 상수 같은 것이었다.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그 공허의 병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혼자인 순간을 던져 버리지 못했다. 외로움은 정말이지 병 같았다. 어두운 밤, 찬 서리 내리는 새벽 작은 방에 홀로 남을 수 없어서 하염없이 신촌 거리를 걸었던 것은 외로움 때문이었으니까.


외로움이 생활을 망가뜨리고 있었을 때,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해 외로움이 생각에 스미지 못하도록 틈을 주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와 몸이 모두 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에는 외로움을 생활을 이야기할 때 떠올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들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밤, 어느 길 위에서 외로움을 마주했다. 아마 그것은 어떤 기대의 좌절일 것이었다. 다만, 좌절을 만든 것은 내 바깥의 일이 아니라, 나의 너무 큰 기대였던 것 같다. 나조차 감당하지 못할 것들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대가 좌절되자 마치 혼자 남겨진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좋은 일이 아니었다. 건강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의 나로서 살아야 하는 것은 오직 나였다. 내가 나로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공백이 있는 나의 삶을 마주했을 때, 잘못된 무력감을 느끼게 됐던 것 같다.  무력감은 공허가, 공허는 외로움이 되었다. 모두 다 잘못된 인과의 연쇄 속에 있었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을 때 외로움에 굳었던 몸이 조금 풀렸다. 잘못을 알았고, 잘못을 이유로 허탈해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을 방치해두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내가 믿은 방향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 분)이 탈옥을 위해 작은 망치로 벽을 조금씩 부순다. 그리고 벽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시멘트 덩어리를 바지 사이로 흘려버린다.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것처럼 걸으며, 몰래. 마치 그 장면처럼 걸으면서 나는 외로움을 버렸다. 아니, 내가 버린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외로움을 만든 잘못된 기대였던 것 같다. 다만, 그것의 덩어리는 쉬지 않고 생겨나서 계속 걸으며, 몰래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것이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부지런 아주 부지런히.



외롭지 않기 위해 밥을 많이 먹는다고 했던 최승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외롭지 않기 위해 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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