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hen Sep 26. 2022

지속되던 서사를 끊기.

존재론적 안보에서 벗어나기

내가 속한 상황 혹은 내가 살아가는 삶에 관한 서사(narrative or story)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종의 존재론적 안보(ontological security)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규정할 수 있다. 변화를 선택하여 더 나은 것을 향해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 변화를 추구할 때 야기되는 '불안(anxiety)'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은 이 안보를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나는 지금껏 적지 않은 상황에서 존재론적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 선택을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그 경향을 버리면 어떨까 하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해 왔던 것 같다. 한동안 나와 내가 가진 것에 대한 희생이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여겼다. 그러나  내가 희생한 것들이 큰 서사의 변화가 던질 오늘의 불안을 등지기 위해 소모할 만큼만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다다랐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내게 내뱉는 거친 언사와 폭력에 가까운 행동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는 없다. 물론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기 위하여 내 자신의 변화는 필요하겠지만, 그 관계가 결코 중요한 것들을 너무나 크게 희생해서 내가 아닌 것이 되게 만들 것을 요구하거나, 혹은 내가 선택한 이유마저 형해화시키는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 변화를 그저 수용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내가 그에게도 그런 사람이었을지 모르겠다. 존중하지 않고, 그래서 그가 존재하고픈 방식으로 존재하지 못하도록 막는 폭력적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관계의 서사가 폭력과 폭력이 만나, 그것을 상쇄하며 애써 유지되는 서사를 가진 과정에 불과했다면, 나와 그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관계에 관한 서사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어온 고된 과정을 더 이상 받아들일 명분이 내게는 없다.


이제 존재론적 안보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쉽지 않겠지만, 그것을 해보려고 한다. 한 가수의 노랫말처럼 "기억하지 않아도, 잊히지 않을" 시간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시간과 그것을 따르는 기억의 의미가 사라진 '어떤' 공백이 남길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길을 가고 싶다. 아니, 갈 수 있고 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쉽지 않았던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