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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14. 2022

호감 인사

'안녕'이란 말의 가치

사람을 잇고 관계를 유지시키는 힘은 그들 사이에 만들어져서 있으면서 만날 때면 떠올리게 되는 '좋은 이야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이야기는 단지 사람들이 공유하는 추억으로서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한 즐거운 경험은 사람들이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게 만드는 자산이 된다. 그래서 관계의 빈자리는 언제나 추억의 크기만큼 크다. 그러나 관계에 관한 좋은 서사는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는 우연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인간관계를 일정 정도 예측 가능하고, 관리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기 때문에 관계를 이어가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추억 속의 이야기를 즐거움으로 만들었던 까닭이 관계를 만들어간 사람들의 명시적 혹은 암묵적인 노력에 있고, 그 노력을 구성하는 것들이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 노력의 서사가 다름 아닌 좋은 이야기다.


좋은 이야기는 우연이 관계에 던지는 어려움을 걷어내는 역할을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생겨난 공동의 이야기가 없다면, 그들이 맺은 관계는 아주 우연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우연은 사람들의 생각이 자리하는 공간과도 같다. 필연의 영역에서 사람들은 어떤 자율성(autonomy)을 누릴 수 없지만, 우연의 영역에 사람들 저마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감정과 판단이 자리할 수 있는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연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맺어온 관계를 지키려면, 사실상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노고를 멀리할 수 없다. 누구도 관계를 둘러싼 모든 것을 고려할 수 없고, 주의를 기울일 수도 없다. 따라서 관계를 지키려면 관계를 위협하는 요소를 관리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야만 한다. 우연의 영역 안에서 헤매지 않을 영역을 좋은 이야기를 통해서 구축할 수 있다.



사람들의 삶은 우연의 바깥에 결코 있지 않다.

우연의 공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는

믿음을, 안정감을, 기대를 관계의 상수로 만든다.



관계를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실마리가 좋은 이야기에 내재되어 있는다. 즉, 관계에 관한 좋은 이야기 속에 그 관계를 좋은 것으로 만드는 윤리와 도덕이 무엇인지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인간관계에서 만들어진 윤리와 도덕은 사람들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계선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서, 갈등이 있더라도 충돌로 비화되지 않도록 지켜야 할 선을 윤리와 도덕이 알려주는 것이다. 무엇하나 확실하지 않은 관계의 영역에서 윤리와 도덕은 경계선으로서 완전한 불확실성을 일정 정도 제거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좋은 이야기를 관계를 이어가는 일에서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관계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안녕’, ‘잘 지내세요?’로 시작해 ‘잘 가요’, ‘또 봐요’로 끝내는 호감 인사로서 시작함으로써 관계에 좋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을 함께 시작하고,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차별의 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였던 정치철학자 영(Iris Marion Young)은 포용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타자'를 차별하지 않는 정치제도를 만들 수 있는 실천방법으로 호감 인사를 이야기한다. 타자는 난삽하게 이야기하면, 다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슈미트(Carl Schmitt)는 다름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 적대라고 했을 만큼 사람들의 관계에서 다름은 '문제적'이다. 영은 문제적인 '다름'을 넘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자신과 대등한 사람으로서 인정하는 평등의 영역에 다른 사람을 들이기 위한 노력으로 호감 인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안녕'을 호감 인사의 대표적인 예시로 볼 수 있다. 이 호감 인사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당신이 거기에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을 알리는 의사표현이 된다. 그리고 그에게 약간에 불과하더라도 관심을 가질 의사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의 대등한 주체로서 인정한다는 뜻을 일부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서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를 개시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좋은 관계는 사람들 각자가 가진 특성을 존중한 상태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에 대한 나의 관심, 나에 대한 녀의 염려, 그리고 우리의 다음 만남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같다.



'안녕'이라는 말은 만남의 시작과 끝에 놓인다.

내가 너를 알고, 존중하며, 걱정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안녕이라는 말에 현재가 계속되고, 미래가 예정되며, 과거가 기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코 사소한 것이 될 수 없다.



관계에서 어쩌면 하고 싶은 말에 담긴 의미보다, 안녕이라는 인사가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오래도록 맺어온 관계조차 너무나 연약해서 상대에 대한 인정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을 때면 그 속도가 느릴지라도 서서히 붕괴될 수 있다. 그래서 호감 인사가 중요한 것이다. 호감 인사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인정에 관한 의사표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관계에 관한 좋은 이야기는 서사를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이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대등한 자격이 있음을 서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관계에 관한 좋은 이야기의 시작은 안녕과 같은 호감 인사로 시작되고, 계속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사소한 것처럼 보였던 '안녕'이란 말의 부재가 이유일 수 있다. 결국, 관계를 이어가는 힘의 많은 부분이 호감 인사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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