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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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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May 05. 2023

비가 내리기 전에.

며칠 전부터 큰 비가 제법 오래도록 내릴 거라고 했다. 지난밤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며 늦은 밤까지 논문 작업을 했다. 그러나 잠에 들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일어났다. 침실에서 나와 가장 먼저 창 밖을 확인했다. 큰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다만, 창밖에는 비가 조용히 내릴 뿐이다. 


비 예보를 듣고 며칠 전부터 비가 내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정했다. 비가 내리기 전에 당장 해야 할 일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호흡대로 살기 위해서 가능하면 일을 쌓아 두지 않았다. 가끔 너저분해지기는 하지만, 둘 자리를 정해 물건을 두는 것처럼 생활도 정리된 상태로 두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비를 피해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렇지만 비가 오기 전에 무엇인가 해두고 싶었다. 비가 내리기 전에 조금 더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빨래를 했다. 비가 해를 가리기 전에 널어두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몸이 지쳐있었지만, 달리기를 했다. 비가 내리면, 가벼운 몸으로 달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몇 권의 에세이집을 샀다. 비가 몰고 올 감정을 피할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오늘처럼 근래 몸을 쉬지 말고, 움직여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직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에 휩싸이고는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 이유를 만든다. 


빨래가 다 마르고, 비가 내린다. 해야 할 일을 해두었고,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을 시작했다. 책상 앞에서 침묵하고 귀를 기울이면 빗소리가 창문을 넘어 내 귀에 들려온다. 우울이 가신 것은 아니지만, 아주 가끔 우울을 느낄 만큼, 침묵이 우울로 빠지지 않을 만큼 삶의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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