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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Apr 29. 2023

남루해졌을까?

다시 내 삶을 돌려놓고, 100일의 시간이 지났다. 평온을 허물어뜨리고, 기대를 뭉갰으며, 신뢰를 앗아간 다툼을 끝내고 다시 평온을 찾고, 진전을 기대하는 시간을 시작한 지 석 달의 시간이 조금 더 지난 것이다.


그동안 내가 내 삶에 걸었던 기대의 한 부분이 무너진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운 날이 가끔 있었다. 하루하루가 적막으로 채워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에서 찬 기운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할 이유를 찾으며, 적막한 생활 속에서 사랑하는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현실에 대체로 만족하며 지냈다.


다만,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점이 안타까웠다. 100일의 시간은 모든 것을 회복하기에는 그렇게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 잃은 신뢰는 시간이 지나도 다시 회복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약간의 절망이 찾아오고는 했다.


 "남루해졌을까?"


하루는 질문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고, 삶의 큰 축이 흔들리는 지금의 삶이 신뢰 위에서 쌓아 올린 정돈된 삶과는 크게 차이가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날실이 되고, 관계가 씨실이 되어 촘촘하게 짜여 단단한 질감을 가진 삶을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약한 것, 그리고 그 약한 것마저 성기게 짜 너저분하게 된 씨실로 삶을 조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남루해진 것 같았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인 문제인지 한참을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성기게 짜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고, 남루해 보이는 것이 아름다울 때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또 탄탄하게 짜인 옷을 좋아하지만,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같은 천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국 삶을 남루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절망의 늪에 삶을 던져 넣는 자신이었다. 의미와 가치를 찾으며 살아가는 동안에는 삶이 남루해질 까닭이 없으니까. 


지나간 시간, 지나가버린 인연은 과거에 두기로 했다. 여전히 원한이나 복수심 같은 것들이 짙은 밤에 찾아오기는 하지만,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결국에는 털어내기로 마음먹으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충분히 곱씹어 보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반성과 반성의 틈에 끼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100일을 의미 있게 여기기로 했다. 


남루해진 것이 맞을지 모르지만, 그마저도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살아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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