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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Jun 15. 2023

계속 버티는 이유

마지막 처럼

학교에 오는 길에 시론 격으로 쓴 두 가지 연구의 후속 연구를 더 미루지 말고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정말이지 느닷없이 찾아오곤 한다. 오늘도 비슷했다.


도서관에 와서 당장에 생각나는 내용을 메모했다. 생각해 보니 하나는 이미 협업 논문을 통해서 시작한 것인 듯하다. 나머지 하나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이미 도달해 있어서 조금씩 시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3년 부지런히 글을 쓰려고 했다. 한국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식으로 공부하며 학위까지 받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관심을 공유하는 저자의 폭은 매우 좁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연구자들은 생각보다 도처에 있었다. 그래서 글을 왜 쓰려고 하는지, 왜 연구를 하려고 하는지 이따금씩 자문하고 자답하지 않으면 버티기 쉽지 않았다. 이유 없이 앞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맞으며 서있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까.


많은 날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썼던 것 같다. 야릇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점차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학문하는 일을 계획하고, 수행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심을 두는 국제정치학자 한 분이 자신의 책에서 누구를 위해서 책을 쓰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자신이 알고 싶어서라는 취지로 답을 한 적이 있다. 아마 내 생각도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한다.


물론 모든 일을 할 때마다 하나의 생각을 덧붙이고는 한다.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모자란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선생님들, 선배님들이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왜 굳이 네가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버텨왔다. 때로는 윽박지르며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버텼다. 그 시간들을 보내며 나 같은 사람도, 나 같이 학문하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켜왔던 것 같다.


어떤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조금 더 익숙한 것들을 하면 덜 고통스럽게 한 순간을 일단락 지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거의 매일 한다. 그러나 내가 알고 싶은 것,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 그 어떤 버팀의 형태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규범처럼 여기며 버텼다. 그리고 오래 버티려면 정리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고, 쓸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야만 한다고 늘 다짐해 왔다.


그래서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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