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전 상태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쉬지 않고 책을 읽고, 연구를 하며, 논문을 쓰려고 했다. 최선의 노력을 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허투루 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더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새롭게 해야 할 일들을 더 찾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것을 하나 더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외로움이 짙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그때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얼마 전 후배와 나눈 대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단서를 찾기는 했다. 어떤 방식으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과정을 마무리하고 싶은지 방향을 어렴풋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아직 꺼내기는 너무 흐릿해서 마음속에 담아만 두지만, 윤곽이 생겼다.
다만,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 두 사람의 작가가 나눈 편지를 책으로 묶은 글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삶에서 중요한 문제를 공유하며, 문제에 접근하는 언어의 결을 서로 이해하는 대화를 나누는 일상이 내게 간절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두 작가의 필담을 통해서 확인하고, 다시금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서 간절한 마음을 풀어낼 수 없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됐다.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여러 일들로 생각보다 오래 묶어뒀지만, 지금 내가 머문 곳에서의 삶이 좋지만, 더 이상 여기에 더 머무는 것이 좋지 않겠다 생각을 한다.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끝내야 할 것들을 끝내고, 묶어둔 끈을 하나둘씩 풀며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짙은 외로움과 채워지지 않는 갈증으로 괴로울 것 같다. 이제 안전과 안정을 뒤로하고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고독과 불안에 휩싸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지금, 변화를 시작할 적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