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흔적이 내 이야기가 되도록.
근래 프렌치 워크 재킷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옷은 19세기말 프랑스에서 탄생하여 노동자 계급이 널리 입었다고 한다. 이 재킷에는 허리춤의 양쪽 주머니와 가슴팍 한쪽의 노출된 주머니, 그리고, 반대쪽에는 안쪽으로 주머니가 있다.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일컬어 블루컬라라고 지칭하는 것의 유래가 이 재킷이라는 말이 있다. 블루컬라라는 말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이 재킷은 특별히 '프렌치 블루'라고 하는 푸른 계열의 색을 기본 색상으로 한다.
그 푸른 재킷에 특별히 매력을 특별히 느끼고 있다. 이 재킷으로 널리 알려진 몇 개의 프랑스 브랜드가 있다. 그 회사들 말고도 여러 브랜드에서 패션에 대한 나름의 정체성을 담아 이 재킷을 만들고 있다. 다만, 프랑스의 몇몇 회사들은 몇 가지 소재로 이 재킷이 처음 시작되던 무렵의 형태에서 큰 틀의 변화 없이 이 재킷을 생산하고 있다. 개버딘, 코튼 트윌 등등으로 불리는 소재이다. 그러나 두더지의 피부라는 의미를 지닌, 몰스킨(moleskin)이라고 하는 면 소재로 만든 것이 '근본(originality)'이라고 여겨진다고 한다. 두터운 소재이고, 노동자들이 오래도록 입기에 충분한 내구력을 지닌 소재라고 한다.
이 푸른 재킷은 빌 커닝햄(Bill Cunningham)이라고 하는 사진가 덕분에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푸른색 재킷을 입고 길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서 그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입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프렌치 워크 재킷을 찾아보면, 그의 모습이 처음 등장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커닝햄 때문에 내가 이 재킷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이 재킷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지 연유도 기억나지 않는다. 푸른색 계열의 옷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드물게 푸른색 셔츠를 입는 경우가 있지만, 파랗다 싶은 상의는 데님 소재의 옷을 제외하고는 잘 입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내게는 어디까지나 네이비 색상 계열의 옷이 푸른색 옷의 최대한도였다. 외려 샌디 혹은 카멜 등의 색을 좋아한다. 초등학생이 조카마저 삼촌은 똥색을 좋아한다고 기억할 정도로.
다만, 오래도록 입으면, 그 소재 덕분에 생활의 흔적이 남는다는 경험담이 있는 프렌치 워크 재킷의 특성 때문에 이 재킷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모양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내가, 그래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내가 누군가 다른 사람이 기억할 것을 기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그동안 살아온 내 삶으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생활을 채우는 작은 것들부터 나다운 것들로 채우기로 결심했고, 흔적이 남는, 기능이나 목적이 스타일이 된, 이 옷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바버 재킷을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오토매틱 시계를 사용하고, 급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만년필 한 자루를 오른편 가슴 한쪽에 꽂아두려고 하는 까닭과 비슷한 이유였던 것 같다.
나로서, 나답게 살아가고 싶은, 너무나 강렬한 열망을 갖고 있다. 사람들 속에 섞여서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답게 존재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리고 최근 그 마음이 더 강해지고 있다. 내 삶을 채우는 모든 것들이 이야기이고, 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나를 기억하는 내 옷을 갖고 싶어 지기 시작했다.
프렌치 워크 재킷을 가장 오래도록 생산했다는 브랜드의 프렌치 재킷을 구매했다. 다만, 프렌치 블루 색상을 구매하지는 못했다. 몰스킨이 아닌 다른 소재의 새 제품을 구할 수는 있지만, 몰스킨 원단의 프렌치 블루를 새 제품으로 구매하기는 어려운 탓이다. 프렌치 블루 재킷을 입는 많은 사람들이 빈티지샵에서 이미 다른 사람이 입어 색이 충분히 오래되어 멋스러움을 가지게 된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이제 나다운 생활의 모습을 조금씩이라도 이 옷에 새기고 싶기 때문에 남의 옷을 사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입을만한 옷인지 알기 위해서 데님 소재의 것으로 가지게 됐다. 르몽생미셸이라는 브랜드의 옷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밋밋하다 생각했지만, 곧 마음에 들었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 특별하지 않음이 좋다. 옷 입는 사람이 생활에서 부단히 수행하는 그의 작업을 지지해 주는 이 옷의 무던함이 좋았다. 그래서 나의 프렌치 블루 몰스킨 재킷을 기다려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존재의 의미를 조금씩이라도 새길 수 있는 공간을 작게라도 갖고 싶고, 이 옷이 그 의미를 조금은 지켜주고, 이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