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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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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18. 2023

악몽

버텨야지.

멈춰야 했던 순간에 대한 꿈을 꿨다. 지난 수개월 비슷한 꿈을 종종 꾸곤 했다. 여전히 어려운 날들을 삶에 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제멋대로고, 원하는 대로 생각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제멋대로인 생각이 갑자기 찾아와 새롭게 오늘을 세우려는 나의 의지를 시험하기 때문이었다.


꿈속의 나는 멈출 것인지, 계속 이어갈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다시 서 있었다. 나는 다시 맞이한 그 순간에도 어떠한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결정의 순간을 앞에 두고 거듭 고민을 거듭했다. 이유를 찾고, 선택한 다음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했다. 오랜 시간 비슷한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민하는 괴로움의 깊이와 무관하게 선택은 허무하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와전된 내 마음이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의 순간을 당기는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꿈속의 나는 분명하게 뜻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결정을 유보하며 미적지근한 태도로 시간을 끌었던 것 같다. 스스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관계와, 관계로 이루어진 삶의 모습이 내가 결정을 내려 삶을 그렇게 살아갈 것처럼 사람들에게 비쳤다. 다만, 내 마음은 아직, 아직이라고 소리 내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결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삶이 결정되려고 했다. 유보한 시간이 온전히 원하지 않는 내 삶을 기정사실화했다.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이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라고 한다면, 앞의 것에 3의 가치를, 뒤의 것에 7의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니 정말이지 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것처럼 되었다. 


번복과 오해의 늪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타인의 원망을 듣는 것보다는 내가 힘든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번복을 한다면, 초라해질 것 같았다. 힘든 것이 초라해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덜 원하지만, 이미 현실을 구축하는 힘을 지니게 된 방식의 삶을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것이 내 결정인 것처럼 되었다. 실은 아무것도 결정한 바가 없었다. 그저 휩쓸리고 있었지만, 휩쓸린 것이 아닌 체했던 것이다. 


한 방향으로 갑자기 쏠리려고 하는 삶 속에서 다른 삶 보다 결코 선호하지 않은 삶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 현실의 내 기억을 되짚어 보면, 아름답다고 여긴 순간도, 행복하다고 여긴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나고 났을 때, 긍정할 수 없는 순간들이 점처럼 찍혀 길게 늘어선 선과 같은 시간을 이루었다. 현실의 나처럼 꿈속의 나도 좀처럼 내가 살아왔던 지난 수년의 시간과 같은 삶을 다시 좋아하는 삶의 방향으로 여길 수 있을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꿈속 내 마음은 무거웠다. 나는 그 무게에 짓눌리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다. 간절했다. 호흡이 가빠졌고, 숨이 막혀왔다. 


그 순간 잠에서 깼다. “살았다.”라고 소리를 냈다. 깊이 심호흡을 했다. 그러나 입에서는 쓴맛이 났다. 그 쓴맛에 취한 탓인지 정신이 맑아지지 않았다. 삶을 의지적으로 긍정하려고 거듭 노력해도 갑자기 힘이 빠지곤 했던 기억이 죄책감과 섞여 인출되었다. 의지로 찬 말들로 삶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난날의 기억과 오늘의 평가 탓인 것 같았다. 무거운 마음이 한 구석에 항상 있기 때문에 생각은 더욱 제멋대로가 되었다. 쉽지 않았고, 여전히 너무나 쉽지 않다.


잠에서 깬 후에도 30분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버텨야지."라고 작은 소리를 냈다. 침묵으로 가득 찬 공허의 순간, 내게 스스로 말 걸어 견디도록 북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내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 역시 여전히 내게 기대를 걸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희망을 품어야만 했다. 버티다 보면 다시 좋은 날이 올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결코 쉽게 믿기지 않는 생각을 했다. 두 뺨을 두 손으로 두어 번 쳤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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