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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Oct 06. 2023

서울살이

성실하게 사라지는 서울 살이의 어려움

서울살이가 익숙해질 때도 됐다. 살아온 시간 절반 넘게 서울에서 살았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서울살이는 내게 쉽지가 않다.


명동 어느 패스트푸드 가게 앞, 광화문 어느 계단 위에 덩그러니 놓인 듯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이름 모를 수많은 그들 속에 섞여 위치를 갖지 못한 내가 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현실 때문만은 아니다. 


스무 살에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 오지은이 서울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한 노래처럼 우두커니 길가 어느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보곤 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비춰보며 나의 자리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었다. 나의 좌표 찾기는 미지의 사람들로 채워진 미지의 도시 서울에서 여간 쉽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에 섞여도 외로움이나, 고독이 찾아올 때 가고 싶은 자리, 마음으로 내 자리라고 생각했던 장소가 있었다. 그러나 서울의 쉼 없는 변화에 얽혀 그 자리들이 사라지면서, 나의 위치마저 잃어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경우가 너무나 의외의 순간에, 너무나 쉽게 찾아오곤 했다. 그것이 서울살이 어려움의 또 하나의 이유였다.


지난 휴일의 끝자락 두 권의 책을 들고 외출에 나섰을 때, 또 한 곳의 자리가 사라지게 될 장면을 보게 될 줄은 정말, 정말 몰랐다. 연남동 어느 길가에 앉아, 혹은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계획은 사라지는 모습 때문에 무산되었다.




연남동 동진시장 부근을 지날 때, 시실리와 히메지 사라졌고, 몇몇 보여야 하는 익숙한 상점들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재개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출입을 해서는 안된다는 안내문이 붙은 것을 보았다. 그것으로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끼는 친구와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며, 풀지 못하게 얽혀있는 인생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답 없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었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지만 함께 하기 어렵다는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들었다. 30대마저 끝을 향하고 있는 10월의 어느 날,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던 그 자리들이 사라지게 된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서울에서 좋아했던, 그래서 마음 붙일 수 있었던 수많은 자리들을 잃었다. 그리고 성실하게 잃어가고 있다. 서울은 내게 성실하게 기억의 배치를 바꾸려고 노력하며 변화하는,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고 정 붙이지 않으면 상실을 경험하게 되는 도시 같다. 나보다 물리적으로 오래 버틸 많은 것들로 이루어진 서울은 나에게 안전감을 충분히 주지 못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마음을 붙이고, 거기에 닿기만 해도 내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있는 익숙하게 될, 새로운 장소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서울은 아직 상실의 도시이다.


당분간 목적 없는 외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외출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음에 공기를 넣은 경험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된 것은 너무나 애석하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새로운 장소들을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 볼 생각이다. 많은 것들이 사라졌지만, 지워지지 않을 기억, 그 기억으로 가늠할 나의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또다시 자리를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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