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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Dec 16. 2023

대화의 공간

연애법 2막 1장

1.

텔레비전에서 요즘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연애하는 사람과는 자신의 고민이나 자신이 겪는 어려움에 관하여 가급적이면 이야기 나누지 않아야 하고, 즐겁고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요즘 연애의 한 가지 모습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게 연애야?"라는 의아한 생각이 들지만, 요즘의 연애가 지닌 아주 특별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이해하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하나의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힘든 하루를 보냈다. 하라는 대로 일을 했는데, 왜 그렇게 일을 처리했냐며 화를 낸다. 앞으로는 물어보고 일을 하라고 한다.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내 일이 아니지만 계속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고, 내 일을 처리할 수 없다. 일이 왜 늦는 것이냐며 다그치는 소리를 듣는다. 기운이 쭉 빠진다. 전화가 울린다. 그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난밤 잠이 오지 않아 봤던 드라마가 재미있었다며 억지로 이야기를 짜내듯 한다. 함께 웃는다. 그러다가 오늘 일을 이야기한다. 수화기 너머에서 "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라는 말이 전해져 내게 온다. 얼음처럼 몸이 굳는다.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들기 시작한다. 텔레비전에서 말한 요즘 연애의 반대편에 어떤 모습의 연애가 있을까. 아마도 이런 상황이 있을 것도 같다.



하루를 보내며, 힘들었던 일을 쉼 없이 말한다. 무슨 일이었는지 묻는다. 공감하려 노력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생각한 대처방법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통화시간이 얼마나 길어진 것인지 전화기가 뜨거워진다. 힘든 하루를 보낸 탓인지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이는 내게 어떤 것도 묻지 않는다. 저녁을 먹기는 했는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사소한 질문조차 없다. 내 입에서 이제 아주 짧은 추임새들만이 나오기 시작한다. 전화기 너머로 이상한 기색을 전해졌는지 내 일과에 대하여 갑자기 묻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지친 어느 날 푸념 섞인 말을 무심코 내뱉는다. 다툼이 시작된다. 내게 공감하지 못한다며 화를 낸다.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즐겁지 않다.



하루를 보내며 겪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연인의 대화를 가득 채운다. 극단적 상황처럼 보이겠지만, 언제나 극단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연애라는 아주 특별한 모습의 인간관계니까.



2.

인간관계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숱한 결정에 의해서 정의 내려진다. 특히 연애는 내밀한 일이어서 연애에서 일어나는 일의 내막은 오직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왜 내게 그런 말을 해?"라고 하는 말을 한다거나, 일과를 마친 저녁 쉼 없이 직장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연애의 일상이 왜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 그것이 연애하는 그들에게 좋은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진정 아는 것은 두 사람뿐인 것이다. 그래서 연애를 두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전자의 연애에서는 '공허감'이, 후자의 연애에서는 '피로감'이 느껴진다. 하루를 보내다 보면 즐거운 일보다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 같은 평범한 일과 삼켜서 소화시키기 힘든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난다. 줄을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피로와 고민이 생긴다. 이와 같다면 어렵고 힘든 일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대화가 비는 전자의 연애는 공허를 인지하게 만든다. 한편, 어려운 일들만 이야기하고, 또 듣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없거나,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 듣는 사람은 자신의 힘겨움에 더해진 다른 힘겨움을 마음속에 쌓아두게 된다. 때문에 피로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 


서로 다른 느낌이 드는 모습의 연애지만, 두 연애가 이루어지는 일상에서는 침묵이 너무나 쉽게 찾아올 것만 같은 비슷한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대화가 사라져 '침묵'이 이미 상수이거나, 결국 상수가 되는 관계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3.

말하는 일은 우리의 자아를 사람들 앞에 세우는 일이다. 한 사람은 신체로서 혹은 그를 둘러싼 물질적 조건이나 상황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키(height)라든지,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 사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타인 앞에 세운다. 그러나 그 자신은 말을 통해서 진정 드러난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그 세계 속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 등의 말을 하면서 그 사람의 차별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사람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독특한 자아를 가진 존재로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말하는 일은 자아를 사람들 앞에 세우는 일이 된다.


이와 같다면, 대화는 자신을 자신으로 드러내고, 서로 다른 사람으로서 서로의 앞에 선 사람들이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상호작용(inter-action) 하며, 관계의 형태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화는 그것을 통하여 자신이 스스로 규정한 자아의 의미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음(recognize)으로써 진정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때문에 대화의 지속은 서로의 앞에서 뚜렷해지는 자아가 특유의 모습으로 관계의 의미를 굳히는 사건으로서 연애와 같은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질적인 작용이 된다.


그러므로 말이 사라지고 대화가 비어 침묵이 상수인 연애는 결코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없다. 대화가 사라지고 침묵의 연속이 된 연애는 연애하는 두 사람이 시공간 위에 물리적 차원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더라도, 자아가 있어야 할 자리가 실제로는 빈 관계가 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마주하고 있지만, 누구도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극단적 연애는 유사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즉, 두 연애 모두 상대의 입에 재갈을 물려 대화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오직 즐거워하고, 좋게 여길 수 있는 일만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은 마음에 있는 어려움을 상대방에게 털어놓지 못하도록 일종의 규범을 정하여 삶의 큰 부분을 이루는 일을 대화의 소재가 되지 못하게 만든다. 반면, 오직 자신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화라고 하는 상호작용에서 상대가 말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을 없앤다. 다른 방식이지만, 상대방에게 재갈을 물리는 결과를 낳는 점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규정할 수는 있더라도 해답을 찾는 것은 연애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연애에서 문제가 된 일이 다른 연애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지닌 세계관 혹은 가치관에 따라 어떤 일을 문제로 여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편,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고 원칙을 정해 어기지 않고, 지키더라도 관계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삶은 너무나 큰 변동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정한 원칙은 쉽게 깨어지고, 원칙을 고수하는 행동은 관계에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상대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는 것 말고는 달리 침묵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존 레넌(John Lennon)은 imagine에서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을 한다. "천국(heaven)이 없다면, 국가가 없다면, 사유재산이 없다면"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의 다툼의 근원이 무엇인지 상상하듯 성찰해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침묵이 생기지 않도록 그 문제를 없애는 방법 말고는 달리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5.

재갈을 물리지 않는 것은 상대가 말할 수 있도록, 그래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공허할지 모르지만, 어려움을 만든 이유가 지니는 의미를 찾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달리 말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연애의 긍정적 측면을 잊지 않는 노력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다.


연애의 특별함은 자신의 세계가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며 생기는 '긴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긴장은 '낯 섬' 때문에 생긴다. 그리고 이 긴장이 상대방이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를 해석하기 위하여 그동안 익숙했던 방식과는 달리 생각하게 만들고, 몸을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활동은 삶의 권태를 해소시키며, 삶을 채우는 피로감을 떨어뜨린다. 새로운 에너지가 삶을 채우며 그간 쌓인 피로와 같은 노폐물을 삶을 바깥에 몰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연애가 주는 긍정적 긴장은 대화가 진정 가능할 때 유지된다. 재론컨대, 대화는 서로 다른 자아가 마주하여 서로 다른 생각이 담긴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결국 상대가 말의 공간 속에 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계속해서 지켜갈 수 있도록 그 공간과 자리의 크기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고,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연애에서 편안함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화가 불편하고 어려운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말을 할 때마다 상대가 모를까 우려해 너무나 많은 말을 해야 하고, 때로는 숱한 말조차 이해에 이르는 도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때문이다. 이 불안은 상대와 나누는 대화의 공간에 자신의 자리가 매우 좁을 수 있다는 생각을 의미한다. 반면, 연애는 대화를 통해 이해에 이르기 위해 서로 인지해야 할 숱한 전제와 같은 것을 말할 필요가 없어질 때 편해지기도 한다. 이는 대화의 공간에 자신의 자리가 안정감을 느낄 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것들이 전제되고 이해된 상태에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서사를 보탤 수 있다. 이를 통해 더 넓은 대화의 공간과 더 넓은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이는 반대로 상대의 더 큰 자리를 인정할수록 자신의 자리도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다면, 연애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건전한 긴장감과 양립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연애를 위해서 긴장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조언하고는 한다. 상대를 의식하여 행동에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옷을 신경 써서 입는다거나, 상대가 좋아할 만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이 이와 같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에 한정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는 대화의 과정이기에 대화 나누기 위해서 상대에게 재갈을 물리지 않도록 자신이 대화 속에서 하는 행동을 고쳐 잡는 것, 대화에서 상대의 자리를 부여하고 지키려고 자신의 말의 크기, 곧 자리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 그것 또한 긴장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존 레넌처럼 평화에 닿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았지만, 평화가 여전히 약해 보이는 것처럼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애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침묵에 빠져 연애가 고사하지 않도록, 상대에게 재갈을 물리지 않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상상하려 들지 않는다면, 부정적 결과는 더욱 가깝게 우리 옆에 있게 된다. 그리고 상대에게 재갈을 물리지 않으려고 자신을 단속하지 않는다면 부정적 결과는 아주 쉽게 찾아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틀림없이 윤기 있는 대화로 채워진 좋은 연애를 할 수 있다. 대화의 공간을 지키고 또 키우기 위해서 스스로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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