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hen Dec 07. 2023

12월은

다짐하지 않고 살고 싶어요.

2023년 12월의 마지막 달을 일주일 정도 보냈습니다. 삶의 고요가 때로는 고독과 동행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시간을 약간은 지나쳐 고독을 삶의 기본형으로 받아들이기로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고요와 고독 속에서 지내던 11월 끝자락 어느 술자리에서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지나친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마주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고독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끝없이 무리하고, 한없이 서두르며 자아가 몰락하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요와 고독을 진정 받아들여 사람들의 세계와 약간은 동떨어져 있는 조용한 생활을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그야말로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고독을 정상으로 여기지 않으니 고독해지면 삶이 망가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고독이 사라지는 시간에는 그 시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리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고통의 주기가 짧아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심각해졌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생활을 다시 쌓아 삶을 바꾸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이유였습니다. 


그동안 성공으로 예감하고 만족을 불러오는 습관 같은 것들을 그대로 두느라 결국 바꾸지 못한 삶의 방식들을 이제는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심을 하고, 고요와 고독 아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차분하게 하며 살아가는 것이 제게 좋은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열망 같은 것이 있습니다. 꿈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숨어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철학에서 의지박약이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데, 충동이 의지박약을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강하게 무언가에 이끌리면, 강한 반작용으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에 의지를 잃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충동이 의지박약을 만드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아마도 제게는 열망과 꿈이 만들어내는 충동, 그것이 삶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하여 생활에 끌어들이는 것이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어쩌면 변화에 대한 의지박약을 낳은 원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열심히 하려고 삶을 이리저리 변화시키는 동안에 진정한 변화를 향한 의지가 꺾인 것이죠.


이제는 충동 같은 것들을 조금 뒤에 두고, 결코 숨어 지내지 않더라도 이제는 조용히 지내며 차분하게 '실현'의 시점을 향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생각이 충분히 숙성될 때까지 묵혀두었다가 글로 내보내는 것처럼 삶의 여러 가지에 숙성의 시간을 두려는 것입니다.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못할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밖에 나타날 때까지 쌓고 쌓으며 때를 기다리려고 합니다. 제게 좋은 모습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려는 것입니다.



 이제 2023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삶에 경고등이 들어온 시간이었고, 여전히 그런 시간입니다.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이라는 시의 화자는 늦은 저녁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무엇인가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매일 확인하고 있는 경고등은 제가 바랐던, 혹은 바랄 수 있었던 어떤 것들이 영원히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인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바랐던 제 삶의 모습은 이제 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고통과 우울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매 순간이 제 선택이 빚은 결과가 드리운 적색의 빛이기 때문에 부정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어제가 내일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어제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허나 어제에 무력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한강 시의 화자가 영원히 지나가는 것을 깨닫고도 밥을 먹듯이 저도 삶의 순간들을 무던하게 견디고,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다짐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고독을 받아들이기로 매일 다짐해야만 진정 아무것도 다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긍정하기 어려운 것들 사이에서 제 자신을 지키고,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 12월의 고독을 잘 견뎌내야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