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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Dec 19. 2023

시를 잇는 새벽

전복되지 않기 위해서

한동안 쉬었던 시 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시를 쓰는 일이 고됐다. 11월 말 신춘문예에 시를 보내고, 아이디어만 메모하고 있었다. 생각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았고, 생각에 어울리는 적절한 말을 찾기 위해서 덜 고민했다. 다만, 아이디어에 불과했지만, 말이 부서지는 순간들, 고치거나 지우고 싶은 말들에 대하여 시를 쓰는 일을 이어왔다. 간신히 심상을 글로 풀어두고 훑어보았다. '때문에' 지쳐버렸다.


수개월 동안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미움을 이해해 보려고 애정이라고 해야 할지,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사람이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어떤 조건이 채워져야 마음속 미움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미움과 이별이라고 하는 하나의 정서, 하나의 생각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하나를 거듭 생각하면, 복잡한 세계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길을 잃지 않고, 계속 이어진 사유의 경로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몰입으로 시간에 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히면 시야를 확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요동치는 삶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필요한 힘을 바깥으로 얻어내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결국, 때로는 하나의 생각에 쏟느라 모자라진 힘 때문에 자신이 쇠약해지는 경험을 하게도 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이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 속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조차 다시 떠올려야 한다. 단순히 떠올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떠올리기 힘겨워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한다. 곧 의미를 단위를 정해 잘게 쪼개 해석하고 새롭게 정렬해 새로운 의미로 구성해 내는 과정이 가끔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결국 마음의 상처를 더 깊게, 혹은 마음의 기쁨을 더 크게, 극단으로 몰아가며 사유해야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기쁘건 슬프건 여유를 잃으면 어느 한쪽이 터져나가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것은 매우 초조하고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달리 힘을 채우지 않으면 쇠약해지는 것이다.


시인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시를 쓰는 사람이려고 했던 한 선배는 시 쓰기를 멈추며, 시 쓰기가 자신을 한 곳에 몰아세워 아래로 아래로 침강시키는 일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 때문에 때로는 시를 쓰며 건강을 잃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이 새삼 가깝게 여겨졌다.  


나는 아직 시를 멈추고 싶지는 않다. 마음에 대해서 사유하느라 고통을 경험한 적도 있었지만, 내 자아가 할퀴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긁혀 생긴 틈이 벌어지고 커지고 또 곪아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은 경험하지 못했다. 한 번도 제대로 마음을 사유하고, 시로 옮겨 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써보고 싶다. 진지하지 못한 삶 같아 내게 미안해지는 순간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쓸 수 있도록 세계 속의 여러 가지 것들을 안에 들여다 놓기 위해 여러 통로를 열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깊이 생각하면 다른 통로까지 길이 멀어지겠지만, 다른 문을 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여유를 좀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으로 어쩌면 진정 사유하고, 진정 쓸 수 있는 순간까지 닿기 위한 것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끝을 진정 향할 수 있는 방편이랄까.


내가 닿은 수 있는 끝이 가까워지면, 지금 이 불편한 감정을 조금 수월하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 끝에 닿기 위해서 오래 걸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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