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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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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Jan 11. 2024

상실의 시대

파괴, 해체, 재조립

개입하고 싶은 세계를 잃은 느낌이다. 끝자락에라도 애써 버티고 서있고 싶은 곳이 지금은 없다. 사람을 만날 때 야릇하게 올라오던 설렘과 긴장이 사라진 이유다. 


관계의 실패가 내게 남긴 것은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지며 약속을 담은 맹세가 헛헛한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의심이 남았다. 맹세를 무용하게 여기니 관계를 의미와 가치로 채워 키우며 미래로 나가는 일에 회의를 갖게 됐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파괴되었다.


파괴의 시기를 살며, 살아온 날들과 달리 살았더라면 좋았겠다 속으로 되뇌며 후회하기도 했다. 후회에 빠져 감상에 젖어드는 동안 오늘의 나는 망가지고, 망쳐지고 있었다. 대화와 글에서 쓰는 말이 어두워졌다. 




후회한 말


고쳐야할 말이 있다

너를 사랑했다는 말

네가 간절했다는 말


이제 의미가 말라

윤기 없이 거칠게 된 말


검게 찌꺼기가 되어

혀끝이 바스라트린 말


고치지 못해 남은 말이

입 속에 알알이 박혀

사랑을 말하려 할 때

깊이 생채기를 낸다.


습관처럼 새살이 돋아

벌어진 틈을 메워

그날의 마음을

아스라이 갈라놓는다


사랑한 너와 바란 우리

흉터가 박혀 이제 

더는 만나지 못한다



숱한 부정적 생각을 끌고 당기는 과거가 머릿속에 남아 오늘을 이루는 생각과 말들을 어둡게 했던 것이다. 과거의 것들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문제는 언제나 현재 시작해 미래에서 해결된다.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려면 맹세를 무용하게 만드는 과거와 과거에 대한 후회를 치워야 했다. 그것은 파괴된 것들을 치우는 일이었다. 다만, 부서진 것들을 치우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부서진 것이 아니라고 여겨 남겨두고 그것에 엉성하게 이어 붙이면 후회로 이어진 것들이 그대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후회를 부단히 거둬들이려고, 파괴된 것들을 치우기 위해서 남은 것들을 스스로 해체하여 내게서 치워버리려고 하고 있다. 



덜 파괴하고, 덜 해체된 땅에서 완전히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세계의 구조를 짤 수 없다. 



파괴의 시기를 지나 해체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관계를 이어왔는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삶을 긍정하는 마음과 오늘을 사는 데 쏟을 열정을 갉아먹는 생각과 행동의 습관을 찾았다. 


문제가 된 습관을 고치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권태를 참지 못하게 만드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을 줄이려고, 곧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고, 간헐적 단식을 하며 욕망의 크기를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통제하고 있다. 이어져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마음을 덜고, 내게 보다 집중하려고 사람들을 적게 만나려고 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잔해가 널려있고, 파이고 솟아 고르지 못한 마음의 표면이 조금씩 평평해지고 있다. 


새롭게 동경하고, 새로운 욕망을 품는 데 대하여 의지를 잃은 것은 아니다. 다시 쌓아 올리려는 마음마저 파괴되고, 해체시킨 것도 아니다. 새롭게, 그리고 달리 나의 세계를 세우려고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진정 새롭고 다른 세계를 구축하려면, 더 많이 해체해 치워야 하지만, 희망 같은 것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도 같다. 어딘가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조차 없는 삶의 지점이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기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끝지점에서 해가 돋아오는 것처럼.




그러나 불안하다. 희망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을 수반한다. 결국 내가 넘기려고 하는 이 시간이 내가 바라는 시작이 될지 몰라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정 새롭게 시작하는 일 밖에는 없다. 고되지만 달리 시작해 다르게 살기 위해 하고 있는 것들 이어가야만 한다. 오늘도 오늘 해야 할 것들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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