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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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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Jan 19. 2024

감기

아프지 말자

늦은 밤, 혹은 아주 이른 새벽 잠시 정신이 든다. 얕은 잠이 길게 이어지며, 몸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몸 상태를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 목이 따끔거리고 열감이 느껴진다. 아플 것 같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비상약을 준비해 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얼마 전 선물 받은 차를 마셔야지 생각하며 약간의 잠을 보태려고 애쓴다. 그러나 잠은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팔팔 끓는 물을 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번거롭다. 정수기 온수를 한껏 부어 차를 만들어 마신다. 그간 단맛을 멀리한 탓인지 차에서 나는 단맛이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금세 몸에 온기가 돈다. 낱개로 포장된 닭가슴살과 밥을 함께 전자레인지에 돌려 욱여넣듯이 먹어 치운다. 얼마 전 점심 약속에서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 감자옹심이를 택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점차 자극적인 맛을 멀리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차와 아침밥으로도 몸 상태는 좋아지지 않는다. 컨디션이 저조하다. 그러나 새벽에 느꼈던 몸의 무게와 달리 움직일만하다. 하루쯤 쉴까, 생각하다가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선다.


30분 남짓 익숙한 길을 걸으며 이러저러한 생각을 한다. 한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을 잘 유지해 왔는데, 갑자기 왜 아픈 걸까. 조심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다 불현듯 갑자기 아플 것 같은 이 느낌이 낯설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일 년이 됐다. 결국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지난날의 기억 때문에 몸에 탈이 난 것이다.


하루를 사는 것, 누군가를 만나는 것 그 숱한 것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고 있음을 새삼 생각한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쌓아 올려 만든 오늘의 나는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나의 연약과 연약이 낳은 비참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받아들이고, 오늘의 나를 수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후회할만한 일이 없이도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을 머리에서 벗겨내고, 그것으로부터 만들어진 고된 마음을 털어내려면 과거에 묶이지 않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 어느 철학자가 떠오른다. 그리고 앞으로는 가급적이면 모험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마음의 온도보다, 마음이 낮춘 몸의 온도보다 특별하게 따뜻한 겨울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시작하는 말로 나지막하게 뱉어내고, 익숙한 길을 걸어가 일과를 보낸다. 다만, 조금 서둘러 귀가하기로 한다. 몸을 쉬어주어야 큰 탈이 나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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