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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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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Jan 05. 2024

손 없는 말

무용의 경험을 남기려 시를 쓴다

가끔, 아주 가끔, 그러나 요즘은 조금 자주 말의 무용을 경험한다. 내가 느끼는 무용은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허탈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말의 무용은 공포와 상처를 남긴다. 공포와 상처가 내게 남은 후에 말을 하고 말을 받는 일이 겁나기 시작했다.




손 없는 말



손 없는 말이 오간다

말끝에 날이 서 있어

날을 피해 말을 돌린다


뜻을 맺지 못해 빈 말이

허공에 소리로 흩뿌려져

공기의 온도를 낮춘다


음성이 자욱한 공터에선

말끝이 얼굴에 닿을 때

서걱서걱 헤집는 소리를 낸다


안개에 벤 살갗이 아려도

뜻 없는 말은 흔적 없이 말라

소리 끝에는 자국이 없다


눈앞에서 사라진 숱한 말이

기억에 숨고 감각으로 일어

우울과 공포의 덫을 놓는다


그날 그 시간의 단어 대신에

보내려던 말을 애써 삼켜

침묵만을 고단하게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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