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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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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n Feb 26. 2024

더플코트

완벽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탐구할 뿐.

오래된 더플코트를 꺼내 입는다. 흔히 떡볶이 코트라고 불리는 코트이다. 모자가 자꾸만 목을 뒤로 당기는 것 같아서 불편해해서 떼어둔 모자가 보이지 않는다. 목을 감싸는 부분에 단추가 덩그러니 놓여있지만, 칼라가 적당히 덮어주어 어색하지는 않다. 


변화를 주어 나름대로 재미를 찾는 것만큼 원형을 찾아 본래의 의미를 찾는 것도 즐거움을 찾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근래 하고는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플코트의 기본형태를 생각하며, 불편하다는 생각만으로 떼어 두었다가 잃어버린 모자의 부존재가 아쉽다. 그러나 지난날 내가 한 선택을 안타까워하지만은 않는다. 모자 없이도 충분히 입을만하다.


몇 해 사이에 체형이 변한 건지 코트가 여유 없이 딱 맞다. 암홀은 특히, 아주 간신히 내 팔을 허락한다. 얇은 니트까지는 허용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상은 꽉 끼는 느낌이 든다. 근래 오래전에 사둔, 대개의 옷들에서 겪게 되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하지만 입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더플코트와 같은 아이템은 입고 싶은 오늘 같은 날이 갑자기 하루씩 생기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새것을 살만큼 애정을 갖는 아이템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색인 코트에 맞춰 청록색의, 약간은 목이 올라오는 니트를 입는다. 코트의 핏감을 생각해 바지는 약간은 타이트한 청바지로 고른다. 고민스럽다. 알렉사 청(Alexa Chung)의 더플코트 스타일링을 떠올리다가 그녀가 얼마 전 보그 지에 마흔이 된 것을 기념하여 기고했다는 글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완벽한 청바지를 찾지 않고, 그저 탐구할 뿐(I’m never not looking for perfect jeans. It is a lifelong quest.)이라는 그녀의 말. 

(알렉사 청의 글은 링크 참조: https://www.vogue.com/article/alexa-chung-shares-40-pearls-of-wisdom-with-vogue)


Alexa Chung & Duffle Coat

칩먼데이의 스키니 진을 좋아하다 지금 리바이스 550에 너무나 큰 애정을 느낀다. 그러나 최근에 산 청바지는 약간은 타이트한 501이었고, 오늘은 폴로의 슬림핏 청바지를 입는다. 그러면서 오늘의 이 청바지가 옳은 것인지 고민하는 자신을 생각한다. 그녀의 말을 생각하면 옳은 일인지 고민할 것은 없다. 그저 좋은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그녀는 또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트렌드는 과감하게 포기하라고 이야기한다. 넉넉한 품으로 입는 사람들 사이에 여전히 타이트하게 입는 사람 한 명 정도 있는 것이 뭐 그리 창피한 일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또 내가 좋아하는 것, 스스로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의 멋을 챙기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아이템들을 부지런히 찾는 것도 지금의 내게 주어진 삶을 흥미롭게 만드는 하나의 질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생각을 이으며, 심심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듯 카모 무늬의 양말을 신는다. 색을 달리할까 생각했지만, 오늘은 색으로 재미를 주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무늬를 포기하지는 못한다.



끝으로 신발의 차례. 처음에는 빨간색 반스 어센틱을 신으려다 다른 것을 찾는다. 반스는 오늘의 기분과 달리, 조금 장난스러운 것 같기 때문이다. 대신에 오래되어 빛 좋은 남색을 잃어가고 있는 데저트부츠를 고른다. 10년도 더 된 것으로 세월을 담는 형태가 좋아 왁스를 이따금씩 먹여두고 있는 것이다. 신발을 신으니 바지를 조금 접을지 말지 고민스러워진다. 그러나 약간은 접기로 한다. 그리고 집을 나선다. 접어둔 바지가 신경 쓰인다. 결국 바지를 내린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까. 길을 걸으며 건물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한다. 그 모습으로 어떻게 입고 있는지 틈틈이 확인한다. 그러면서 무엇을 드러내려고 했고, 옷을 고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떠올리기도 한다. 하루 온종일 나는 내게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특별할 것 없는 오늘의 옷차림을 갖추면서도 무엇을 떠올리고, 고민한다. 그리고 오늘의 답을 찾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머릿속으로 그리는 내 모습이 과연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인지, 무엇이 나를 만들고 있는지 생각하고는 한다.


오늘은 오래도록 잘 간수해 둔 코트와 신발이 오늘의 나를 만드는 것이 됐다. 그것 덕분에 새것에 아쉬워하지 않게 됐다. 어제의 나를 있게 한 것들을 살뜰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구나, 생각한다. 모든 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드는 것이기에 소홀하게 여기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한다. 


스쳐가는 모든 순간, 내가 한, 아주 사소한 선택마저 오늘의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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