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가라앉게 만든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던 2025년이 끝났습니다. 만나지 않고, 대화하지 않으려고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빛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하루 종일 커튼을 쳐두고 낮이어도 밤 같이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정해진 달력의 분량이 있어서 그 시간이 속한 시간마저 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끝을 신용목 시인의 시를 읽으며 보냈습니다. 시의 말들이 제 마음 같았습니다.
연필심처럼 짧아지는 청춘을 감추려고
때로 숨었을까,
시간이 후라시를 비추며 어슬렁거리는 밤의 능선이 있어서 망각의 덤불 속에 웅크리고 앉아
내 속의 아이가 깨지 않기를
그래서 울지 않기를
바랐으나, 매번 아이는 울고 다급히 아이의 이을 틀어막느라 아침마다
한 명씩 몸속의 나를 죽이고
신용목 시집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의 "우연한 미래에 우리가 있어서" 중에서
끝을 알 수 없어서 얼마큼 짧아졌는지 모르지만, 청춘의 길이는 짧아졌고 청춘으로 쓰려던 '아름다운' 기록을 더 이상 제 때 쓸 수 없다는 것을 매일매일 원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돋아오는 아침의 햇살이 어려웠던 것은 좋은 때를, 아름답다 여길 수 있는 때를 잃어버렸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속이기 위해서 깨지 않으려고, 하나씩 하나씩 제 자신을 질식시켰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으로 원치 않는 것을 막고, 저 멀리 세워둘 수는 없었습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오늘의 끝에 다시 오늘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자신을 살아있지 못하게 만드는 동안에 청춘의 연필심은 쓰지 않고도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며 이제 몽당연필이 되어버린 것 같은 그 연필의 마지막 흑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해를 맞이하자 다짐했습니다. 다짐하기 위해서 지난날의 제 모습을 정리하기 위해서 신용목 시인의 시의 말들을 빌려 2025년을 마무리했습니다.
2026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전히 돋아오는 새날의 빛을 마주하는 일이 힘듭니다. 그러나 해가 돋아올 때 커튼을 걷으며 시작했습니다. 햇살이 참 밝았습니다. 그 빛 아래에서 많이 걷고, 많이 이야기하고, 아주 짧은 흑연심으로라도 많이 쓰며 살고 싶습니다. 좋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가끔은 두근두근 마음이 뛰는 행복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