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개발, 개발을 삶] ① 여는 글

개발의 의미를 찾아서

by Karpos Institute

2026년이 되었습니다. 개발협력 분야에 발을 들인 지 12년째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저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일을 하는 방식과 참여하는 자리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처음엔 정책연구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연구과제, 성과관리, 평가를 다뤘습니다. 그러다 지자체 차원에서 사업을 기획·운영하고 관리하는 일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개발협력을 꾸준히 ‘제대로’ 해나가기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정책의 기준과 방식이 중앙정부 기준에 맞춰 움직이고, 분절화를 피하기 위한 장치들이 함께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비수도권의 사정을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해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서로 다른 기준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며 각자의 현실에 맞는 방식으로 ‘알아서’ 해왔던 것 같습니다.


작년부터는 상황이 또 달라졌습니다. 본격적인 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하기보다, 다시 관찰하고, 국내외 도시외교 사업을 구상·실행하거나, 독립연구자에 가까운 형태로 개인 연구를 병행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처음엔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다른 눈이 열리더군요. 현장을 알지만 관여하지 않는 또 다른 관찰자로서의 관점으로 개발협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개발협력 정책과 사업 동향을 뒤쫓아 가며, 그에 맞추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실행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왔습니다. 어느 순간 문득, “내가 혹시 일을 위한 일을 해왔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뜻한 방식의 일을 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저는, 지금의 개발협력 환경과 제가 해오던 일, 그리고 다른 주체들이 해오고 있는 일을 비교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매몰되었다가 빠져나와,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개발협력을 해야 할까?

그리고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침’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런 질문을 붙잡게 된 시기와 맞물려, 개발협력의 글로벌 환경도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신냉전의 긴장 속에서 국가주의가 강화되고, 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취약계층과 민간인의 피해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원은 늘기보다 줄어드는 흐름이 분명해졌습니다. OECD 예비집계에 따르면 2024년 공적개발원조(ODA)는 전년 대비 실질 기준 7.1% 감소했습니다 [1]. 또한 OECD는 2025년에 ODA가 추가로 더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9~17% 범위), 국제개발 재원이 더 불안정해질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2]. 여기에 더해, 2025년 미국의 해외원조 정책은 급격한 동결과 재검토, 대규모 계약 종료로 요동쳤습니다. 일부 보도와 분석에 따르면 USAID 관련 프로그램 다수가 종료되거나 축소되며 국제개발 현장에 즉각적인 공백과 불확실성이 확대되었습니다 [3].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졌는데, 할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드는 현실. 그 속에서 저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정해진 기준”과 “바뀌는 상황”을 따라가느라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정작 그 기준과 상황은 제가 애정을 갖고 참여하고자 했던 마음처럼, 제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잘하고 싶었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 일과 상황. 개발협력은 분명 세상을 더 평화롭고 이롭게 만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나 좋게 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분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장면들을, 너무 자주 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럴 수도 있는 것인지—저는 어느 순간부터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좀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원래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 개발협력에 참여했을까?

기존의 방식이 흔들리는 것은 ‘주체의 문제’일까, ‘환경의 문제’일까?

이럴수록 그 신원(Origine)을 이해하고, 지금 진짜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제가 이런 질문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누구나 다 그렇듯 우리는 차별받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살아오면서 저 자신일 수 없었던 순간들이 있었고, 차별을 받기도 했고, 불합리한 것에 눈감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을 ‘그대로’ 두고는 앞으로의 일을 말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개발협력을 거창하게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제 삶에서 큰 비중과 가치를 가져왔던 개발협력—혹은 ‘개발’—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제가 원하는 모양새대로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열정 있는 개발협력을 통해 제 삶을 다시 개발해 나가고 싶어 졌습니다. 이 소박한 여정의 글을, 가능하다면 여러분과 함께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 여는 글에 이어, 저는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최근 미스 핀란드가 왕관을 내려놓았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중국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눈을 찢는 행위(slant-eye)를 했고, 이후 미인대회 조직위원회가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일부 극우 정치인들이 동조하는 게시물을 이어가면서 논란이 확산되었고, 핀란드 총리가 한국·일본·중국에 사과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4].

보통 북유럽 국가는 ‘모범적인’ 개발협력—정치·경제적 계산보다 인도주의적 가치가 더 앞서는—의 상징처럼 이야기되곤 하는데, 그런 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저는 무척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혼란스러울 정도의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개발협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도 눈이었습니다. 타국에서 만났던 한 어린 소녀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슬퍼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무미건조했던 눈. 그 눈을 보며 저는 어떤 마음을 품었고, 그 마음이 제 삶을 이쪽으로 이끌었습니다. 눈은 타자를 상징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상징화는, 결국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보는 방식”에서부터—개발의 신원(origine)과 연결되는 어떤 마음에서부터—다시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삶은 전 세계인의 삶과 얼마나 닿아있을까요?


心知와 같이 세상을 마음으로 알고,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心指처럼 씁니다.

** 본 계정의 글은 개인의 견해이며 소속기관의 공식 입장과 무관합니다. **


참고/출처

[1] OECD (2025.4.16.), International aid falls in 2024 for first time in six years, says OECD

https://www.oecd.org/en/about/news/press-releases/2025/04/official-development-assistance-2024-figures.html?utm_source=chatgpt.com

[2] OECD (2025.6.), Cuts in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https://www.oecd.org/content/dam/oecd/en/publications/reports/2025/06/cuts-in-official-development-assistance_e161f0c5/8c530629-en.pdf?utm_source=chatgpt.com

[3] KFF, U.S. Foreign Aid Freeze & Dissolution of USAID: Timeline of Events

https://www.kff.org/global-health-policy/u-s-foreign-aid-freeze-dissolution-of-usaid-timeline-of-events/?utm_source=chatgpt.com

[4] 관련 보도(미스 핀란드 논란 및 사과 관련)

https://www.chosun.com/english/world-en/2025/12/14/VMGNZMIXJFC3TN6URNGGNLYQO4/?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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