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개발, 개발을 삶] ② 보다, 보여주다

눈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보여줄 수도 있다

by Karpos Institute



눈은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창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눈으로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짐작하고, 또 눈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드러냅니다. 내가 웃는 눈으로 상대를 바라볼 때, 상대 역시 웃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기쁨은 배가됩니다. 반대로 내가 노려보면, 상대 역시 경계의 시선을 되돌려 보냅니다. 내가 슬픈데 그 눈빛이 외면당할 때, 감정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음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같은 눈이지만, 어떻게 보고 어떻게 보여지는지는 각기 다릅니다. 우리는 보기도 하고, 보지 못하기도 하며, 때로는 보지 않기로 선택하기도 합니다.


최근 ‘미스 핀란드’로 알려졌던 Sarah Dzafce가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눈 찢는 제스처(slant-eye)와 관련한 논란 끝에 타이틀을 박탈당했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당사자는 두통으로 인한 행동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그 설명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현지의 일부 극우 성향 정치인들이 유사한 게시물을 올리며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핀란드 총리가 한국·중국·일본을 향해 공식 사과를 전하는 상황까지 이어졌습니다 [1][2].


저는 사건을 접한 직후 그녀의 SNS를 찾아보았습니다. 당시 사과문으로 보이는 게시물을 본 기억이 있지만, 2026년 1월 현재는 동일한 콘텐츠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삭제·비공개 등 사정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스스로를 “핀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코소보에 뿌리를 둔다”고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3].

그 ‘코소보’라는 단어에서 저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코소보는 1998~1999년 무력 분쟁과 그 과정에서의 광범위한 인권침해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지역입니다 [4][5]. 전쟁은 끝났지만, 그 상흔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핀란드는 2008년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했고[6], 이후 코소보·알바니아계 이주민 공동체도 핀란드 사회 안에서 형성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7].

이주민의 뿌리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왜 누가 보아도 차별과 혐오로 읽힐 수 있는 행위를 했을까. 분쟁과 인권침해의 기억을 가진 정체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으로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피해의 경험은 어떤 이에게는 연대의 언어가 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굳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포용을 경험한 사회라면 포용적일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 기대를 자주 배반합니다.

이 사건을 보며 제가 붙잡게 된 핵심은, 어느 국가가 포용적인가를 단정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회 내부에 오래 잠재해 있던 각기 다른 시선들이 표면으로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상처받은 것은 늘 조롱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포용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컸던 만큼, 저는 그 장면에서 적잖은 충격과 혼란을 느꼈습니다.


여기서 저는 오래된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20여 년 전,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이른바 ‘개도국’으로 분류되던 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아직 제가 개발협력 분야에 발을 들이기 전이었습니다. 회의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의 아주 좋은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일정 중 프런트 데스크 근처에서 체크인하는 사람들을 스치듯 바라보던 순간, 한 중년 남성과 그 옆에 있던 여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종도, 연령대도 상당히 달라 보였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 그 여성은 유난히 어려 보였습니다. 어린 소녀처럼 느껴질 만큼 말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이해할 만큼의 정보도, 그들의 관계를 추정할 어떠한 근거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그날 제게 남은 것은 “사실”이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 마주친 ‘눈’이었습니다.

그 멋진 호텔의 조명 아래에는 여행지의 열기와 즐거움이 섞인 눈빛, 저처럼 업무차 방문한 사람들의 긴장된 시선, 그리고 이들을 응대하는 호텔리어들의 익숙한 미소가 오고 갔습니다.

그 속에서 마주친 그녀의 눈빛은 무미건조했습니다. 희로애락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제게도, 그 남성에게도, 호텔의 어느 누구에게도 완전히 닿지 않은 채 어딘가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생각은 멈췄습니다. 이내 저는 일행들과의 대화에 다시 집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눈빛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 자리에 그 눈빛으로 그녀는 있었을까. 마음이 서늘해졌습니다. 저는 그녀가 아니라, 그 눈빛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개발협력 분야에 들어왔고, 성과관리와 정책연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규칙과 기준, 지표와 성과로 세상을 읽는 눈을 갖추려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는 종종 그 눈빛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 눈빛은 제가 익숙해진 어떤 지표로도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측정할 수 없고, 기준으로 환원할 수 없고, “사업의 성과”라는 언어로는 잡히지 않는 무엇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의 사정도, 그 이후의 삶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 짧은 상식과 소망으로는, 그녀가 조금 더 안전하고 평온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세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바람이 아직도 제 안에 남아, 개발협력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합니다. 개발을 ‘더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 ‘더’는 누구의 눈에서 시작되는가.

어떤 시선은 사람을 사람으로 남겨두고, 어떤 시선은 사람을 조롱의 기호로 바꿔버리는데—우리는 어떤 쪽의 시선을 훈련해 왔는가.

더 잘 사는 것은 누군가를 조롱하고 무시한다고 해서 가능해지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행위를 할수록 세상은 더 분노하고 더 편협해집니다. 더디고 모자라더라도, 마음을 열어 사람을 보고 마음에 담는 연습을 할 때—조금은 달라질 여지가 생깁니다.


저에게 빚처럼 남아 있는 그 눈빛을 떠올리며, 저는 더 궁금해졌습니다. 왜 사람들은 눈을 찢는 행위를 할까. 그렇게 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눈을 찢는 행위(slant-eye)가 어떤 의미로 작동해왔는지 조금 더 살펴보려 합니다. 지엽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세상을 분열시키고 힘들게 하는 혐오와 차별을 이해하는 작은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질문을 남깁니다.

한 사람의 삶이 세상의 삶과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연결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도, 더 나빠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心知와 같이 세상을 마음으로 알고,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心指처럼 씁니다.

** 본 계정의 글은 개인의 견해이며 소속기관의 공식 입장과 무관합니다. **


참고(출처)

[1] Reuters. Finland 총리의 사과 및 논란 경과 보도.

https://www.reuters.com/world/china/finlands-prime-minister-apologises-asian-nations-over-racism-sc andal-2025-12-17/

[2] AP News. Miss Finland 타이틀 박탈 및 확산 경위 보도.

https://apnews.com/article/miss-finland-sarah-dzafce-miss-universe-fd4337d1e08aae8f6f82e44 1a811b249

[3] Sarah Dzafce 공식 인스타그램 소개 문구.

https://www.instagram.com/sarahdzafce/

[4] Encyclopaedia Britannica, Kosovo conflict(1998–99) 개요.

https://www.britannica.com/event/Kosovo-conflict

[5] Human Rights Watch, Kosovo 관련 인권침해 타임라인/자료.

https://www.hrw.org/legacy/campaigns/kosovo98/timeline.shtml

[6] Finland Ministry for Foreign Affairs, 코소보 독립 승인(2008) 보도자료.

https://um.fi/press-releases/-/asset_publisher/ued5 t2 wDmr1 C/content/suomi-tunnusti-kosovon-tasavallan

[7] 핀란드 내 알바니아/코소보계 디아스포라 관련 개요(공개 자료 기반).

https://en.wikipedia.org/wiki/Albanians_in_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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