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개발, 개발을 삶] ③ 같은 생각vs.다른 생각

같아야 할 때, 달라야 할 때가 있는 삶과 배

by Karpos Institute

*주) 이 글에서 언급하게 될 ‘slant-eye’는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표현/제스처를 지칭합니다.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원문 표현을 사용하되, 이를 정당화하거나 희화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거울 속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눈도, 코도, 입도 찬찬히 보니 마음에 듭니다.

오랜 시간 제 자신이라 여기며 살아왔고, 제 삶의 모든 순간을 느끼고, 표현해오고, 생물학적인 생활을 저 자신으로 해 왔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냥 저 자신이기에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아시아인입니다.

Slant-eye(눈을 찢는 행위) 제스처를 하는 사람에게는 여지없이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손흥민 선수도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할 때 관중석에서 누군가 그런 행위를 했었고[1], 앞선 글에서 미스 핀란드의 일에서 보듯 그저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크게 상처받고, 분노합니다. 그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그래서, “slant-eye”에 관해 얼마나 사람들이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구글 트렌드로는 검색 관심(상대지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건은 2004년부터 2026년 1월 10일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검색된 현황을 보았습니다[2].

2004년부터 2026년 1월 10일까지의 전 세계 기준으로 보면, 관심도가 가장 높았던 시점은 2009년 2월이었고(100), 최근의 고점은 2025년 12월(약 10) 수준이었습니다. 검색 관심이 관측된 국가는 43개국이었는데(검색일에 따라 변동), 권역 비중으로 보면 '유럽이 41.8%', '아시아가 30%'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수치가 ‘사용(발화) 빈도’가 아니라 검색 관심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 더 많이 ‘사용한다’기보다 더 자주 논쟁화·보도·교육·문제화되며 검색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인종차별에 민감하다고 말하는 유럽에서 왜 이 단어가 더 자주 소환될까요? 규범이 있지만 이를 실행하는 개인의 성향은 반드시 그 규범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환경과 구조 속에 있는지에 따라 규범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규범이 분명한 곳에서 규범에 반하는 행위가 벌어지는 것은 규범의 문제일까요? 개인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이 둘을 포괄하는 사회 구조(학습, 동조, 침묵)의 문제일까요?


순간, 개발과 관련한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그 예로, 기후위기와 관련한 선진국과 개도국, 북반구와 남반구의 같으면서 다른 생각과 행동들이 있습니다.

경제중심적인 개발 논리로 지구 생태계는 오염되고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상태는 우리의 삶을 위협합니다. 삶을 회복하기 위해 글로벌 사회는 보편적 관점에서 지구 생태계 회복을 위한 공동협력과 연대를 촉구하지만, 막상 실제 행동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경제발전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혁신기술을 통한 오염관리를 하자고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기술과 자원의 불평등을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하거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동참하지 않겠다고까지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26년 1월 10일), 미국은 66개 국제기구를 탈퇴한다고 밝혔습니다.[3][4] (이 주제는 다음 글에서 더 다루고자 합니다.) 그동안 형성된 다자적 글로벌 관계—그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가 다시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흔들리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사회가 더 나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노력을 공동의 개발이 아니라 개별 국가나 특정 부류의 국가들, 혹은 특정 주체들의 입장으로만 보려고 하니 나아가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합니다. 개발이라는 큰 주제에서 본다면, 개발이 무엇이고 그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준이 제각각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조롱은 나쁜 것이고, 한 사람, 한 생명체가 가지는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순화시키고, 조롱하거나 가치를 비하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인종차별에 민감하다고 말하는 사회에서조차 눈 찢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소환된다는 점은, 결국 합의되지 않은 개발의 의미와 각기 다른 개발에 대한 인식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으로 돌아가서, 미스 핀란드 논란 이후 공식 사과와 조치가 이어졌고,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들이 눈을 잡아당기는 사진을 SNS에 올리며 동조하는 일이 한 나라 안에서 벌어졌음을 목격했습니다. 그 모습에 상처받는 이들이 있었고, 동시에 그런 행위를 했던 이들은 아름답게 볼 수 없는 자신들의 사진을 길이길이 남기게 되었습니다.


개발학을 공부하면, 개발의 기준, 방식, 규범들은 역사적으로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크게 형성되어 왔고, 개발의 모습은 일정 부분 서구화에 기반해 왔었다고 배웁니다. 이제는 각 국가나 지역, 공동체의 맥락과 개발의 의미를 찾고, 그에 맞는 자신들만의 개발을 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거의 비슷한 개발 경로를 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개발과 공존의 방식이 다르고, 심지어 서로에게 반하는 행위를 합니다.


Slant-eye라는 용어가 존재하면서 그것을 터부시하는 사회에서조차, 어쩌면 ‘보편타당한 정상’을 정의하고 그에 맞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 논리가 작동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 사고가 다양한 인종과 생명체가 존재하는 글로벌 사회의 보편적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글로벌 사회의 진화와 개발에 잠재적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은 이른바 ‘선진화된 모습’은 다양한 인종과 국가들, 공동체의 무의식이든 자각이든 개발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차별과 조롱이 어떤 순간에는 ‘기준’처럼 작동할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로 저는, Slant-eye가 주로 서구권에서 더 자주 소환된다면 이게 왜 그런지 의미의 근원을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알고 배워왔길래 이러한지. 이것을 ‘개발’과 연관 지어 본다면, 삶 속에서 배우고 익혀온 삶의 기준, 삶을 통해 ‘개발’을 달성하는 기준이 어떠했길래, 그 기준이 삶에서의 차별과 조롱으로 이어져 왔는지 묻고 싶습니다. 서구에서 개발학이 탄생했고, 우리는 그 틀을 통해 배우고 이해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개발학 관련 교과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요?

이 두 가지를 각각 다루면서, 우리는 이미 개발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뿌리는 어떠했고, 그 뿌리에서 자라난 개발의 의미와 우리의 삶은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제가 떠올린 질문입니다.

미운 얼굴을 하면, 미운 내가 됩니다. 고운 얼굴을 하면 고운 내가 됩니다. 현재의 글로벌 사회와 그 사회 속 사람들은 서로를 어떤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心知와 같이 세상을 마음으로 알고,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心指처럼 씁니다.

** 본 계정의 글은 개인의 견해이며 소속기관의 공식 입장과 무관합니다. **


참고/출처

[1] Tottenham, Crystal Palace investigating alleged racist abuse toward Son Heung-Min (ESPN, May 7, 2023)

https://www.espn.com/soccer/story/_/id/37638632/tottenham-crystal-palace-investigating-alleged-racist-abuse-son-heung-min

[2] Google Trends: slant eye (2004–2026-01-10, Worldwide)

https://trends.google.com/trends/explore?date=all&q=slant%20eye&hl=ko

[3] Withdrawing the United States from International Organizations, Conventions, and Treaties that Are Contrary to the Interests of the United States (The White House, Jan. 7, 2026)

https://www.whitehouse.gov/presidential-actions/2026/01/withdrawing-the-united-states-from-international-organizations-conventions-and-treaties-that-are-contrary-to-the-interests-of-the-interests-of-the-united-states/

[4] Which are the 66 global organisations the US is leaving under Trump? (Al Jazeera, Jan. 8, 2026)

https://www.aljazeera.com/news/2026/1/8/which-are-the-66-global-organisations-the-us-is-leaving-under-tr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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