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몽키 비즈니스, 라이어스 포커로 바라본 책과 영화 속 금융계.
부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최근 금융계를 다룬 소설을 많이 접했다. 금융 업계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기에, 나름 필독서라 극찬받은 책들만 골라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말까지 보고 나면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책의 내용이 유치하거나 허무맹랑해서가 아니다. 책에 서술된 그들의 일상은 멀리서 보면 단조로움의 연속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까다롭고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 디테일의 향연이다.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너무도 일관된 내용 전개에 있다. 끝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각색을 하려다 보니 자극적이고 권선징악적 소재들이 주목을 받겠구나' 싶으면서도, 현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종국에는 금융 산업을 '뿌리 뽑아야 하는 악(惡)한 산업'으로만 묘사하는 서술 방식이 너무도 아쉽다.
다채로운 비교를 위해 잘 알려진, 혹은 최근 개봉한 영화까지 가져왔다. 작품 소개를 하면서 그 전개 방식을 구분해보자면, 처음 등장하는 주인공들(「몽키 비즈니스」 속 존 랄프와 피터 트룹,「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주인공 조던 벨포드와「돈」에 등장하는 조일현)은 기존 금융계의 적폐 세력들, 즉 때가 묻을 대로 묻은 선배들과는 다른 사회 초년생으로, 부푼 꿈을 안은 채 금융계에 입문한다. 서서히 현업이 돌아가는 방법을 채득하고 나서는 이미 성공한 거물(이런 금융계 영화에선 종종 이런 단어가 사용되더라)들을 부러워하며 동기부여를 다지지만, 화려한 커리어의 선배들 앞에서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존과 피터는 업계 사교 파티에서 술에 거나하게 취해 테이블 밑에 숨은 채 와인 잔에 실례를 해야 했고, 조던은 0.1% 수수료를 받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실업자가 된다. 조일현도 마찬가지. 그 역시 무제한 성과급여 앞에서 의욕이 앞섰지만 실상 매매/매수도 구별 못하는 초짜 브로커로, 첫 거래에서 처참하게 박살 난다.
그렇게 독자와 시청자들을 찌질하고 안쓰러운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시킨 후, 작품이 선택하는 방법은 바로 짜릿한 커리어 상승이다. 종종 '대박', '그랜드 슬램 홈런'으로 표현되는 이 단계에서 주인공들은 돈의 맛을 알게 되고, 마음속에 자리한 허영심으로 인해 기존의 소중한 관계들과 마찰을 빚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조던 벨포드다. 대학 졸업 후 이어진 경기 침체로 실업자가 된 조던이었지만, 페니스톡 사기(쓰레기 주식을 화려한 화술로 속여 거래한 뒤 50% 수수료 강탈)라는 '만루 홈런 종목'을 개발한 후로는 [스트래튼 오크몬트]라는 회사의 CEO로 스스로를 치켜 새움과 동시에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슈퍼카, 호화 저택, 요트 등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결국 마약에까지 손을 뻗치게 된다. 자신이 가장 초라할 때 곁에 있어주었던 아내와는 냉큼 이혼하고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인간관계 역시 제대로 형성될 리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던은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선배들보다 더 위에서, 더 자본주의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버리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정도가 약하다 뿐이지 유지태를 만난 후의 조일현도 상황은 동일했다. 그 역시 "7억? 큰돈도 아니네"라는 명대사와 함께 한강이 보이는 집을 장만하고, 6년간 교재한 여자 친구와도 이별했다. 대신 같은 부서 대리와 함께 새 관계를 시작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치장한다. 복분자 농장을 힘들게 가꾸시던 부모님을 농장에서 손 뗄 수 있게 해 드렸지만, 변해버린 그의 태도는 부모님으로 하여금 하나뿐인 자식에게도 그 손을 떼게 만들었다.
이후로는 서두에서 설명한 헛웃음 나오는 결말들이 도사리고 있다. 조던은 '주가 조작 혐의'를 쫓던 FBI에게 잡혀서, 함께 저지른 범법 행위들 (ex. 마약 복용, 음주운전, 불법성매매)까지 모조리 처벌을 받아 행복했던 파라다이스를 떠나야 했다. 조일현 역시 금융감독원으로부터의 추격에 시달렸으며, 연행되지는 않았지만 해피엔딩을 맞지 못했다. 일련의 사기 혐의 대가로 조일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여자 친구와의 인연, 자신의 신념, 부모님과의 관계 등을 모두 상실했다. 「돈」은 조일현의 성장영화, 고난 극복 영화처럼 묘사됐지만, 금융감독원 사건을 겪은 후의 그가, 정녕 사회 초년생과 같은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일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요점은 조일현 역시 찌든 때가 잔뜩 묻은 채로 금융계에 잔존했다는 것이다. 존 랄프와 피터 트룹은 다행히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B 업계의 고된 업무량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승진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새 삶을 찾는 선택을 한다. 결국 금융계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이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어둡게 끝이 난다.
난 금융 산업을 혐오해, 실물 경제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거든.
성급한 일반화 일지 모르겠지만, 미디어의 묘사들이 금융계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함께 공부하는 경제학과 동기 / 선후배들과 대화를 해보면 심심찮게 '금융 혐오 발언'이 등장한다. 금융산업은 허구를 쫓는 산업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실물경제라고. 결코 틀린 말이 아니지만, 저 이유가 혐오의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금융업은 어디까지나 실물 경제를 보조하는 입장에 선 산업이다. 자금이 필요한 산업에 자금을 조달해주고, 그들이 성실하게 주주들에게 그 몫을 배분할 수 있도록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기업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게끔 한다. 어느 대기업이든 신생 기업인 시절을 겪는다, 그들이 유니콘 기업을 넘어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금융 산업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실물 경제의 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금융 시장의 상승 심리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지, 실물 경제에 비해 과도하게 발전했다고 해서 금융 산업을 매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식시장이 비(非) 이성적으로 과열된 욕망의 집합체이기에 싫어한다는 발언도 설득력이 없다. 주식시장으로 대변되는 금융계는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유일한 완전경쟁시장이다. 합리적인 경제 주체들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모든 참가자에게 동일한 속도로 정보가 배포되며, 주식이라는 동질의 상품을 거래하는 완전 경쟁. 인간이 참여하는 시장 중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욕망이 없는, 오롯이 이성만이 지배하는 시장은 없다. 현재 북한의 장마당만 방문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할 것이다. 단지 영화를 통해 표현된 이미지를 가지고, 금융 산업만을 매도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어느 순간 거품이 빠지고, 저만을 밀도 있게 압축해서 보면 아무것도 아닐까봐 겁이 나요."
"카푸치노를 바라볼 때, 거품도 카푸치노의 일부인걸요."
- 아이유(IU) & 김중혁 작가, KBS 대화의 희열 8회 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업계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바로 금융 버블의 양산이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 경제학을 배우면서 버블은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만 치부되어 왔고, 실제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근대 네덜란드에서 발생했던 튤립 버블부터 1990년대 후반에 나타난 미국의 IT 버블을 지나, 가장 최근에 일었던 비트코인 버블까지. 버블은 비(非)이성적인 경제 움직임의 상징과도 같았고, 이를 조장하는 것은 금융 시장이었다. 허나 버블은 혁신에 따른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튤립 버블은 그 당시 발전했던 네덜란드 금융 시장의 신(新) 거래 방법인 '선물거래'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끼친 영향이 있었고, IT 버블은 스티브 잡스와 실리콘벨리의 유니콘 기업들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비트코인 버블 역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가 크게 발전하게 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세간의 평가가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모른다.
아이유를 카푸치노에, 그녀에게 주어진 대중의 기대를 거품에 비유한 김중혁 작가의 비유는 훌륭했다. 과대평가 됐다는 두려움에 떠는 IU로 하여금 거품을 결국엔 쪼그라들 의미 없는 무언가가 아닌, 그보다 큰 개체, 즉 그녀 자신의 필수적인 일부로 바라보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금융 버블 역시 거품 자체가 아닌, 산업 발전의 큰 그림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금융시장을 통한 금융 버블은 신기술을 등장시키는 필요조건 중 하나로 여겨져야지, 무분별한 악행의 결과가 아니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돈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이었냐고?
여기까지 글을 끌고 와 보니, 본의 아니게 금융계에 대한 변호인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시작은 최근에 본 금융 관련 책과 영화들에 대한 글이었건만, 이래저래 끄적이다 보니 결국 내가 금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로 귀결된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악행을 저지른 주인공들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고 나면 클리셰인 줄 알면서도 감독들이 나지막이 삽입하는 내레이션이 있다. 그렇게 돈에 집착해서 무엇을 하려고 했냐고. 앞서 말했던 세 작품 외에도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다루었던 「빅쇼트」, 작년에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 속 주인공들은 이 질문 앞에서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지금까지의 노력을 비웃는다.
필자는 이 대사들이 상당히 거슬리며, 오만하다고까지 생각한다. 한밤중에 치킨을 먹으면 그 순간은 행복하다. 치킨을 늘상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치킨을 먹은 후, "어차피 살만 찔 텐데 뭐하러 먹었을까..." 하는 푸념을 잠시나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니세프 광고에서 볼 수 있는 불우한 아이들이 치킨을 먹는다면 과연 그런 고민을 할까?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다. 치킨 비유가 적절한 것인지는 제쳐두더라도, 이미 그들이 금전적으로 피라미드의 끝까지 가 본 사람들이기에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들을 바라보기만 한 관객들의 대다수는 그 생각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당장 일상으로 돌아가 그런 대사를 외칠 만큼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격 없는 사람이 외치는 만족과 수긍은, 타인에겐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와 같이 정신 승리에 불과하다.
'각색을 하려다 보니 자극적이고 권선징악적 소재들이 주목을 받겠구나'라는 생각을 필자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방금 전 언급했던, 1997년 IMF를 다루었던 영화 「국가부도의 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 「빅쇼트」 속의 주인공들은 글의 서두에서 설명한 4명의 인물들과는 같은 길을 걸음에도 취하는 태도가 다르다. 그들은 '지금 내가 옳은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인가' 혹은 '금융업이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돈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한다. 물질 만능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그렇게 돈을 벌어 뭘 할 거야?" 라 묻는 것은 진부함을 넘어 순진한 생각이다. 미디어와 언론은 지금까지 그랬듯 교훈적인 메시지를 던지겠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는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그리고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적어도 그 메시지를 맘 속에 품고 있는 한, 조일현이 말한 '숫자에 불과한' 돈이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앗아가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