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불행을 파는 가게

by 재완

Prologue.


당신은 불행을 파는 가게를 본 적이 있나요?


불행을 파는 가게라니, 마치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골목길 어딘가에 음습하게 다 깨진 조명을 깜빡이면서 사람들을 불행으로 집어넣을 것만 같은 이름이죠.


하지만 아니에요. 불행을 파는 가게는 밤에는 문을 열지 않아요. 비가 오는 날에도 열지 않아요. 따스한 햇살이 가득 내리쬐는 어느 골목길을 산책하듯 걷다 보면 어, 여기에 이런 가게가 있었네? 하고 우연히 만날 수 있게 되는 그런 가게랍니다. 가게 앞에는 항상 색색의 꽃과 초록의 화분이 있고 가게 주인은 화분에 물을 주면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죠.


불행을 파는 가게라니, 아주 불길한 가게구만! 사람들은 수군대며 지나가지만 주인은 개의치 않아요.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가게니까요. 특히나 요즘같이 모두가 완벽한 행복만 바라는 시기에는 더욱더 말이죠.


더 큰 슬픔으로 음악을 써내는 작곡가에게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불행을 이겨내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사업가에게도

길에서 넘어지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어린아이에게도,

불행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불행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불행을 파는 가게,

오늘부터 영업 시작합니다.


01. 불행을 파는 가게.


평소와 똑같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수정은 익숙한 골목길을 꺾어 들어가다 낯선 간판을 발견하고서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건 또 무슨 콘셉트이야?"


수정이 사는 호두동은 오래된 빌라들이 모여 있는 작은 동네였다. 그 흔한 대형마트 하나 없고, 편의점보다 빌라 1층에 위치한 정 씨 아저씨가 하는 슈퍼가 더 가까운 그런 동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옆 동네 해두동이 뜨기 시작했다. 낡은 철공소가 가득해서 먼지만 가득하던 해두동이었는데, 갑자기 SNS에서나 본 카페와 공방들이 오픈하더니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오니 가게가 또 생기고, 가게가 또 생기니 월세가 올라가고, 비싸진 월세를 피해 옆 골목과 뒷골목까지 가게가 생겨났다. 그리고 옆골목 뒷골목에 생기던 가게들은 어느새 수정이 사는 호두동까지 진출했다.


해두동만큼은 아니지만 호두동도 골목 사이사이, 빌라 사이사이에 작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섰다. 아주 작고 비싼 소금빵을 파는 가게부터 반짝이는 것이 가득한 반지공방, 한국어는 하나도 없이 일본어만 가득 쓰여 있는 술집까지 계속 가게들이 생겨났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최근의 수정은 새로운 가게가 갑자기 나타나도 웬만해서는 놀라거나 관심을 주지 않았다. 곁눈질로 쓱 한번 보고 ‘아, 이번에는 이런 가게가 생기는구나’ 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수정의 눈앞에 있는 가게는 도저히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정의 15년 생애 동안 살아남기 위해서 독특한 콘셉트로 꾸미거나 특이한 간판을 내건 가게들을 많이 봤지만, 저 가게의 간판은 눈에 띄고 살아남기 위해서 걸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별로’였다.


얼핏 보면 카페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하얀색 페인트를 칠한 1층 건물 왼쪽에는 묵직한 오크색의 나무문이 있었고, 벽 오른쪽 옆에는 같은 나무틀을 쓴 커다란 창문이 보였다. 가게 안쪽으로 따뜻한 조명색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은은한 커피 향도 풍기는 듯했다. 간판만 아니라면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카페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불행을 파는 가게]


가게의 외관을 전체적으로 흩어보다 다시 간판에 시선이 머무른 수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불행을 파는 가게라니, 도대체 무슨 콘셉트로 저런 이름을 지은 건지 감도 안 오는 수정이었다.


“행운이나 행복을 파는 가게도 아니고 불행을 파는 가게라니. 저런 이름이면 대체 누가 저기를 간담.”


수정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과도한 콘셉트로 금방 없어질 가게네,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가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왔다.


“하와이…?”


가게 안에서 나온 사람은 아주 키가 크고 늘씬한 여자였다. 웨이브가 굵게 들어간 갈색의 머리는 허리까지 찰랑거렸고,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크롭탑과 짧은 청바지를 입고, 그 위에는 노란 파인애플이 잔뜩 그려진 초록색의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얇은 로브가 찰랑거리는 모습이 마치 마녀의 망토처럼 보이기도 했다.

흰색과 우드톤의 차분한 가게 외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수정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도대체 저 가게는 뭘 하는 곳이길래 저렇게 이상한 콘셉트로 가득 채운 걸까.

도대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정이 눈알을 굴리며 여자와 가게를 번갈아 보던 그때, 여자가 수정을 쳐다보며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수정은 깜짝 놀라 눈을 피했다.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괜스레 훔쳐본 것 같아 바로 집으로 옮기려 할 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들어올래?”


대뜸 처음 보는 사람에게 들어올래요, 라니.

수정은 여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여자를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저요?’라고 되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궁금해하는 거 같아서. 아까부터 계속 가게 쳐다보고 있었잖아.”


한참 서서 구경하던 게 들킨 수정은 살짝 부끄러워졌다.


“아, 가게 이름이 특이해서…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서요.”

“특이한가? 최대한 쉽게 지은 건데.”


수정의 말에 여자는 자신의 가게 간판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여자다, 처음 봤고 두 마디밖에 안 나누어 봤지만 수정은 촉이 왔다. 이상한 사람과 말을 섞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이다, 수정은 슬쩍 뒷걸음질을 치며 여자를 향해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그럼 …"

“진짜 직관적이지 않아? 이름만 봐도 아, 저기는 불행을 파는 곳이구나, 하고 알 수 있잖아.”

“네 …? 진짜 불행을 팔아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여자의 대답에 뒤를 돌아가려던 수정은 발걸음을 멈추고 되묻고 말았다. 내가 지금 말이 되는 질문을 하고 있는 건가, 생각하며. 의심 가득한 수정의 표정과는 달리 여자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불행을 파는 가게. 메뉴도 다양하고 가격대도 다양한데, 와서 구경해 볼래? 내가 그간 모은 불행이 좀 많아서…”

“불행이 돈 주고 살 수 있는 거예요? “

“여기서는.”


네 잎 클로버를 팔면서 행운을 판다고 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불행을 파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여자가 나를 놀리는 것 같은데, 수정이 계속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자 여자가 허리에 양손을 짚으며 고개를 까딱 하며 말했다.


“생각보다 장사 잘 돼, 세상에는 불행이 필요한 사람들도 많거든.”

“세상에 불행이 필요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자의 말에 수정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여자는 씩 하고 웃음을 짓더니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든 인간에겐 불행이 필요해. 깨달은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뿐이지. 그리고 그 순간에 내 가게가 보이는 거고.”


마지막 말에 여자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는 것 같다고 수정은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의 말에 아무런 대꾸하지 않았다. 여자의 말은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이해를 하고 싶지도 않은 말이었으니까. 수정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여자는 허리를 짚었던 손을 풀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머리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가게가 또 보이고 궁금하면 언제든 문 열고 들어와. 아, 참고로 내 이름은 춘이야. 가게에 내가 안 보여도 춘, 이라고 조용히 부르면 금방 나타날 거야.”


도깨비야 뭐야, 춘의 말을 들으며 수정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춘은 여전히 웃음 지은 얼굴로 오른손을 가볍게 흔들고는 등을 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수정은 잠시 아쉬워졌다. 이상한 사람과 엮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불행을 판다는 게 뭔지, 진짜 불행을 판다는 건지, 그게 어떻게 돈을 살 수 있는 건지, 그걸 대체 누가 왜 산다는 건지 궁금한 게 한가득이었다.


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서 딱 궁금한 것만 물어보고 나올까, 그러고 나서 그냥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오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학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길게 있을 수도 없으니까 혹시라도 잡힐 것 같으면 학원 핑계를 대고 나오면 되지 않을까.


닫혀버린 가게의 문을 보며 수정이 우물쭈물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 수정의 옆을 지나쳐 가게로 성큼성큼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 가게 앞에 도착한 여자는 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천천히 가게 문을 열었다.


“진짜 … 있네?”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여자를 보며 수정은 눈이 동그래졌다. 가게 앞 창문 안으로 들여다보자 춘이 카운터에 서서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간 여자는 카운터 앞 의자로 가서 앉았다. 저 사람은 진짜 불행을 사러 온 걸까, 수정은 들키지 않으려 창문 옆에 귀를 바짝 댄 채 혹시라도 무슨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귀를 쫑긋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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