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서는 한 때 잘 나가던 뷰티 유튜버였다. 아니,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가장 팔로워가 많을 때는 9천까지 찍었으니까. 팔로워 1만도 금방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9천에서 1만까지 그 1천 명이 늘지 않았다. 구독자를 늘리고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시중에 나와있는 화장품이란 화장품은 다 사고 리뷰를 올리려 했지만 급하게 올린 일회성 리뷰는 내용이 부실해 조회수가 나오지 않았고, 갚지 못할 카드 값만 늘어났다.
늘어난 빚에 새로운 화장품을 사지 못하고, 그러니 올릴 영상이 없어지고, 영상을 안 올리니 구독자가 떨어지고 조회수도 떨어졌다. 올리기는 힘들었는데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9천 명이던 구독자는 어느새 1천 명 아래로 떨어졌고, 영상에 달리는 댓글은 협찬을 가장한 사기 댓글과 ‘얘도 이제 끝이네’라는 내용의 댓글뿐이었다. 그 댓글을 끝으로 민서는 더 이상 영상을 올리지 않았다.
“먹을 게 없네 …”
냉장고 안에는 생수가 하나, 소주가 3병, 그리고 먹다 남은 김치통만 있었다. 나름 뷰티유튜버라고 몸에 좋은 것만 챙겨 먹으려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통장 잔고도 바닥이다 보니 몸에 좋은 음식은커녕 뭘 먹기만 해도 감사한 날들이었다.
“소주가 탄수화물이지 뭐.”
민서는 소주병을 꺼내고 찬장에 남아있던 라면을 꺼냈다. 라면을 봉지 안에서 부수고 수프가루를 뿌려 다시 섞었다. 잘 섞인 생라면을 펼쳐놓고 소주를 잔에 따라 한잔 먼저 들이켰다. 찐한 알코올이 목구멍을 넘어가 빈 위를 찌릿하게 자극했다. 그 엄청난 자극에 민서는 몸을 부르르 떨고서는 생라면을 와그작 씹었다. 역시나 자극적인 짠맛이 입 안을 자극하며 침이 한껏 넘어갔다.
“역시 소주에는 MSG가 최고야”
생라면과 함께하니 소주 한 병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민서는 생라면을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더 꺼내왔다. 그리고 소파 앞 테이블에 앉으려는 순간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무릎 나온 회색 트레이닝, 목 늘어난 티셔츠, 세수도 하지 않고 머리는 핀으로 올려 묶은 채 소주병을 들고 있는 모습. 이게 어딜 봐서 뷰티 유튜버를 했던 사람이란 말인가. 민서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다.
“와, 나 지금 진짜 너무 웃긴데? 진짜 이게 무슨 꼬락서니냐, 윤민서 진짜 가지가지한다. 이 구질구질하게 웃긴 모습을 나 혼자만 볼 수 없지.”
이것도 나름 직업병인지, 민서는 오랜만에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노트북을 켜고 유튜브 라이브를 접속했다. 영상을 안 올린 지도 세 달쯤 지났고, 1년 전부터는 라이브를 해도 100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라이브를 켠다고 한 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 민서는 그냥 지금 어딘가에 대고 한풀이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아무도 듣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여러분 하이~ 아니지. 아무도 안 듣고 있는데 여러분이 어딨냐. 나 자신 하이~. 헤헤, 나는 사실 지금 내 꼴이 너무 웃겨서 틀었어. 이거 봐, 나도 그래도 한 때는 뷰티 유튜버네 뭐네 하면서 이쁜 척만 하고 그런 것만 올리던 사람인데. 구독자 없고, 조회수 안 나오니까 이것 봐 봐, 그냥 백수야. 아니, 백수도 아니지. 이건 뭐 집에만 있을 뿐이지 노숙자랑 다른 게 없어. 돈이 없어서 지금 소주에 생라면 먹고 있는 거야. 유튜버 하면 돈 많이 벌 줄 알지? 나도 그랬어. 쫌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고 1년 간 회사도 때려치우고 했는데 이게 뭐야. 지금 남은 건 뚜껑만 뜯은 화장품들이랑 카드 빚뿐이야…”
어차피 아무도 듣지 않을 거, 민서는 아무 말이나 다 했다. 소주가 2병을 넘어가면서부터는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그냥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지, 뷰티 유튜버를 할 때는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런데 그게 지금은 다 빚으로 남았고 새로 어디 취직도 못할 나이라는 말 등등. 신세 한탄만 계속했다. 술에 취해 말도 꼬이고, 눈도 풀린 민서는 30분이 지난 시점부터 몇 명이 들어와서 보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치채지 못했다. 응원의 말과 댓글이 달리고 있었지만 그것도 보지 못한 채 소주 세 병을 다 마신 후에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띠링.
띠링.
띠링.
“아이고, 머리야…”
민서가 깨질 듯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난 건 정확하게 17시간 뒤였다. 빈 속에 들이붓는 소주가 이렇게 무섭다. 조용했다면 더 잘 수 있을 텐데, 오늘따라 스마트폰에 알람이 자꾸 울리고 있었다. 이렇게 알람 올 일이 없는데, 민서는 억지로 뜬 눈을 잔뜩 찡그린 채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쳐다보았다.
“어? 이게 뭐야?”
알람이 계속 울리던 스마트폰에는 [000님이 민서 님을 후원했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민서가 유튜브 계정으로 들어가자 어젯밤 술 취해 올린 라이브가 민서의 계정에 남아있었고, 조회수는 3천을 넘긴 상태였다.
“뭐야, 조회수 왜 이래?!”
한참 뷰티 유튜버로 활동할 때도 자주 보지 못한 조회수였다. 대체 어디서 알고리즘을 탄 건지, 누가 어떻게 퍼다 주기라도 한 건지 라이브를 켰을 때만 해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서 혼자 떠든 건데, 민서도 모르는 사이 라이브를 통한 후원금이 들어와 있었다.
[우연히 들어왔는데 솔직한 이야기에 공감하고 갑니다]
[예전부터 구독자예요. 영상 안 올라오는 거 보면서 요새 힘들구나 했는데, 이렇게까지 힘들었군요. 유튜버 진짜 아무나 하는 거 아닌가 봐요.]
[누구나 힘들 때가 있죠. 응원합니다.]
[누가 카페에 캡처 올린 거 보고 왔어요. 저도 한번 해봤다가 망해봐서 그런가 공감 가네요.]
“사…삼십만 원?”
화장품 후기를 아무리 열심히 올려도 조회수 수익이 몇 만 원 수준이었는데, 어젯밤 술 취해 올린 라이브에 후원금이 삼십이만 원이나 들어왔다. 이거면 지금 당장 배달음식도 시켜 먹고 어제 술안주로 다 먹은 라면도 다시 사다 놓을 수 있었다. 밀린 월세도 내긴 해야 하지만 월세를 내기에는 부족한 돈이니 먹을 것부터 사는 게 맞았다. 어떤 것부터 사야 할까 하고 눈을 굴리던 민서는 문득 이 상황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예쁜 척 공들여 화장을 하고, 이것저것 열심히 비교해서 올렸을 때보다 울면서 생활고를 고백한 영상 하나가 더 돈이 되다니 … 게다가 민서의 지금 영상을 누군가 캡처해서 여초 카페에 [망한 유튜버 현실 고백]으로 올려 주목을 끌면서 조회수는 실시간으로 계속 오르고 있었고, 댓글로 후원도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불쌍한 척 한 번에 삼십만 원이라 …”
민서의 눈이 번뜩였다.
그날 밤, 민서는 유튜브 채널의 이름을 ‘민서의 뷰티로그’에서 ‘민서의 극복 일기’로 바꾸었다. 뷰티 영상들은 일부러 내리지는 않았다. 자신이 망한 뷰티 유튜버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니까. 어젯밤 올린 라이브는 어느 커뮤니티 같은 곳에라도 올라간 건지, 계속 조회수가 늘고 후원금이 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민서는 다음날 다시 라이브 방송을 켰다. 전처럼 각종 화장품을 쌓아놓은 채 하는 라이브가 아니라, 창백한 민 낯과 목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서 카메라 앞에 섰다. 라이브를 켜자마자 띠링 띠링하는 알람이 울리며 순식간에 100명이 넘게 들어왔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올라가는 숫자를 보며 민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지만 금세 눈에 힘을 빼고 기운이 없는 불쌍한 표정을 만들었다.
“어… 엊그제 갑자기 많은 분들이 제 라이브를 봐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놀랐어요. 솔직히 술에 취해서 푸념한 건데 많이 공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오늘 라이브는 그냥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사실 우울증이 와서 집 밖으로 안나간지도 일주일이 넘었고,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무서워지고 그래서 아무도 안 보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날 혼자 떠든 거였거든요.”
[저도 우울증 걸려봐서 알아요. 대면으로 사람 만나기 힘들죠ㅠ]
[후추언니님이 3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얼굴 창백한 것 좀 봐 ㅠ 밥 좀 먹어요]
[빵순이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민서는 눈을 내리 깔은 채 힘없이 말하면서도 슬쩍슬쩍 후원 알람이 터질 때마다 바라보았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1만 원 정도씩 후원해 주는 알람이 심심치 않게 터지고 있었다. 오늘은 테스트성으로 켜본 거니까 여기까지 할까.
“응원해 주셔서 모두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뷰티 유튜버로 망한 건 친구한테 배신당했던 것도 있고, 사람들이 무서워지다 보니 우울증이 생겼어요.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응원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오늘 하루만큼은 버틸 힘을 얻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오늘 라이브는 켰어요.”
[친구한테 배신이라니? 사기당했어요?]
[뭐야, 친구가 사기를 쳐?]
한마디 흘렸을 뿐인데 댓글창이 타 다다다닥 올라가는 것을 보며 민서는 힘없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 꾸벅 구십 도로 고개를 숙인 후 라이브를 껐다. 화면과 사운드가 모두 꺼진 것까지 확인한 후, 민서는 숙인 허리를 펴며 방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었다.
“미친! 10분 만에 30만 원이 또 들어왔어!! 보는 사람도 500명이 넘었네, 와이씨. 내 채널에서 이런 숫자가 나오다니.”
지금 당장 출금할 수는 없지만 크리에이터 스튜디오에 쌓인 금액을 보는 것만으로도 민서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며칠만 버티다가 날짜가 되어 출금신청 하면 어차피 진짜 내 돈이 될 숫자들이다.
“불행이 돈이 되네.”
민서는 지난 몇 단치의 수익 0과, 요 며칠 사이의 몇십만 원의 수익을 보며 중얼거렸다. 행복한 사람은 시기와 질투를 받지만 불행한 사람은 위로와 동정을 받는다. 동정으로 받은 만원, 이만 원이 모여 이번 달 민서의 월세를 만들었다. 민서의 머릿속에 얼마 전 뉴스에서 본 사례가 떠올랐다. 희귀병에 걸린 아빠와 딸이 그 사연으로 5억 원의 기부금을 받았다는 기사였다. 희귀병, 시한부 같은 불행이라면 동정이 억 단위로 커진다.
“일단 우울증 던져놨고, 희귀병 같은 것도 좀 찾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