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불행이 오지 않는 불행

by 재완


시간이 되어 면접 장소에 갈 때까지, 준석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자신의 셔츠를 보면서 준석은 불안해졌다. 불행을 파는 가게라니, 그런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행운으로 바뀔 불행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준석의 재치라거나, 패기라거나, 끈기를 보여줄 수 있는 일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호진 님, 김준석 님, 이세영 님 들어가실게요.”


어느덧 준석의 면접차례가 되었다. 준석은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면접장으로 들어섰고,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의자에 앉았다. 면접관 중에 혹시라도 옷에 커피 자국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둘러봤지만 모두 깨끗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렇다면 면접관이 준석에게 커피를 쏟는 건 아닐까 하고 또다시 둘러봤지만 면접관들의 자리와 준석의 사이는 커피를 있는 힘껏 뿌려야만 맞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커피를 쏟는 불행은 결국 찾아오지 않는 걸까, 준석은 계속 불안해졌다.


“정호진 님부터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가운데 앉은 남자가 지원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소개, 그 말에 준석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준비한 자기소개가 있었는데 오전 내내 불행 생각만 하느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뭐였더라, 짧고 임팩트 있게 소개하는 게 좋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보고 준비한 멘트가 있었는데…!’


앞사람이 말하는 동안 준석은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 내며 고민을 했다. 초조한 마음에 아랫입술까지 깨물며 준석이 고민하던 그때 가운데 면접관이 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준석 씨.”

“네? 네!”

“오늘 아침에 요 앞 카페에 있었죠?”

“네? 아.. 네! 맞습니다!”

“면접 한 시간 반 전에 도착하다니, 시간관념이 엄청 철저한가 봐요.”

“예? 아.. 예. 혹시라도 차가 막힌다거나, 사고가 난다거나,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 미리 와있었습니다.”

“그렇죠, 면접은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니까 절대 늦으면 안 되죠. 그럼 한 시간 반 전에 와서 준비한 자기소개 들어볼까요?”


면접관의 말에 준석은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듯 멍해졌다. 그렇다, 준석은 한 시간 반 전에 면접 장소에 도착했고 그 시간이라면 준비한 면접 자료를 10번은 읽고 외웠을 시간이고, 회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놓친 부분은 없을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준석은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네… 저는 이 회사의 디딤돌이 되어 시작하고 싶은 …”


그 이후로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더듬거리는 자기소개에 면접관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준석은 급격히 자신감이 떨어졌고, 모든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분명 알고 있고 준비했던 질문인데도 자신 있게 떠오르지 않았다.


“회사 이야기 말고 다른 것 좀 물어볼까요. 혹시 본인이 겪은 큰 위기가 있었나요? 그리고 그걸 어떻게 극복했나요?”


형민이 받았던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준석의 계획대로라면 형민처럼 아침부터 몰아치는 불행을 다 극복하고 이 자리에 앉아서 당당하게 그 경험담을 말해야 하는데, 준석에게는 오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옆 사람들은 학교에서 과제를 하며 겪었던 힘든 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었던 진상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준석 씨?”

“네?! 네. 저는 … 저는 그 … “

“특별히 없으시면 없다고 해도 됩니다. 모든 사람이 큰 위기를 겪는 건 아니니까요.”

“아…네. 저는 특별히 없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실망한 표정으로 뭔가를 적는 면접관을 보며 준석은 그대로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사실 준석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큰 위기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제대로 준비한 것도 없이 멍청하게 흘러가고 면접을 망친 게 분명한 이 순간이 준석에게는 가장 큰 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이 위기라고 대답한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분명 극복하는 방법까지 말해야 할 텐데 준석은 지금 이 위기를 극복할 수가 없었다.


준석의 머릿속에는 카페에서 자료를 읽었어야 하는데. 아니, 카페 안에 면접관이 있는 줄 알았다면 그들의 대화라도 들어봤어야 하는데. 아니, 택시 안에서 자기소개를 외웠어야 하는데, 자료를 놓고 온 걸 알자마자 택시를 돌려서 다시 가지고 나왔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만 꽉 차 있었다.


결국 준석에게는 점차 질문이 오지 않았고, 준석은 자기소개와 두세 가지의 공통 질문에만 대답하고 면접장을 나와야 했다. 준석이 산 불행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면접에서 또 떨어지는 불행은 찾아왔다. 하지만 준석은 알고 있었다. 이건 자신이 만든 불행이라는 걸.


“수고하셨습니다. 면접 결과는 일주일 이내에 이메일로 통보해 드립니다.”


안내해 주는 담당자에게 인사를 하고서 준석은 면접장을 터덜터덜 나왔다. 건물 바깥에는 준석과 함께 면접을 본 사람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걷는 게 보였다. 그는 말로는 다 망쳤어,라고 크게 말하면서 통화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고 후련해 보였다. 똑 부러지는 대답을 많이 했으니 분명 준비를 많이 했고 그만큼 다 쏟아내었을 것이다. 형민이 그러했듯이.


형민의 말도 안 되는 불행이 행운으로 바뀌었던 건, 그 모든 일을 겪고도 포기하지 않고 면접장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면접 전 날, 밤을 새우면서 자기소개를 준비하고 외우고, 회사 정보를 찾아봤기 때문에 알람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잠든 것이었다. 끝없이 외우고 공부했던 지식이 있었기에 면접관들의 당황스러운 질문에도 재치 있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준석은 반대였다. 형민과 비슷한 불행을 하나 샀다고 그것만 믿고 그것이 자신에게 기적 같은 행운과 재치를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도 비슷했다. 어차피 나는 안될 테니까,라고 하면서 불행이든 행운이든 뭔가 자신을 도와주기 만을 바랐다. 그게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건 줄도 모르고.


[야, 오늘 면접이지? 저녁에 술 한잔?]


준석이 동네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형민의 톡이 도착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도 너처럼 되려다가 망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지, 그냥 내가 멍청한 짓 한 건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준석은 한숨을 크게 쉬고 중얼거리면서 불행을 파는 가게를 지나쳐 집으로 향했다. 가게 안에서 춘이 창문너머로 준석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준석은 자신이 불행을 파는 가게를 지나가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그리고 일주일 후 준석은 노트북을 들고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준석이 가장 가고 싶어 했던 회사 ‘주원기획’의 공고가 드디어 떴다. 그간 대충 복사 붙여 넣기만 했던 자기소개서를 뜯어고치고 꼼꼼하게 회사 정보를 다 찾아본 후에 이력서를 제대로 써낼 계획이었다.


지난번에 본 면접은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준석은 계속 어설픈 불행에 기대고, 불행의 뒤에서 나는 안될 거라는 생각으로 앉아있기만 했다. 그 불행을 스스로 넘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당장 넘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고 하고 있다. 자기소개서를 다시 쓰는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드르륵-


카페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준석이 노트북을 세팅하자마자 진동벨이 울렸다.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가지고 준석이 뒤를 도는 순간, 뒤에 있던 여자와 부딪히고 말았고 준석은 들고 있던 커피를 그대로 자신의 옷에 모두 다 쏟고 말았다.


“어머! 어떡해! 괜찮으세요?”

“아… 아하, 아하하.”


여자는 준석과 부딪히자마자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정작 준석은 자신의 옷을 다 적신 커피를 바라보며 갑자기 웃음이 터져버렸다.


“왔다, 드디어.”

“네?”


여자는 보지도 않은 채 준석은 허탈한 듯이 하지만 후련한 듯이 크게 웃었다. 그런 준석을 보며 여자는 미친놈인가, 하고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다 다시 준석의 얼굴을 자세하게 바라보았다.


“김준석?”

“예? 누구..”

“맞네 – 나야. 정희령. 17학번.”

“어?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진짜 오랜만이다. 졸업하고 처음인가? 몇 년 만에 보면서 이런 꼴로 만들어서 어떡하니, 너무 미안하다.”

“아, 아니에요. 이거 제가 산 불행이라, 괜찮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어요. 근데 선배님, 졸업하시고 바로 취직했다고 들었었는데 … “

“응. 운이 좋았지. 나 주원기획 다녀.”

“주원기획이요?”


주원기획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준석이 눈을 반짝이며 희령의 손을 덥석 잡았다. 희령이 놀라며 손을 빼려고 했지만 준석은 희령의 손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어…근데 인사팀이라…”

“대박! 선배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뭐야, 왜 이래?”


준석이 샀던 사소한 불행이 드디어 찾아왔다. 그리고 이 불행을 행운으로 바꾸는 것은 지금부터 준석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걸, 준석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게 비록 아주 작은 행운일지라도, 도움일지라도 지금 이 사람의 손을 잡고 끌어서 노트북이 있는 자리로 가야 한다는 걸 준석은 알고 있었다.


당황한 채 이끌려가던 희령도 준석의 노트북에 펼쳐진 이력서를 보고서는 상황을 이해했다. 티셔츠가 커피로 흠뻑 젖었지만 준석은 신경 쓰지 않고 희령에게 계속 질문을 했고, 희령 역시 아주 사소한 것까지 본인이 아는 것들에 대해서 정성껏 대답을 해주었다. 준석의 티셔츠에 물든 커피가 점차 마르면서 마치 날아가는 새의 모양처럼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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