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돈이 되는 불행

by 재완

민서는 온라인에서 ‘친구에게 사기당한 후기’ ‘아프지 않은 희귀병’ ‘불행한 인생’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사기당한 후기는 어찌나 많은 지 웬만큼 크게 사기를 당한 게 아니면 사람들의 동정표를 얻기 힘들어 보였다. 아프지 않은 희귀병이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희귀병에 걸린 사람들의 사연은 더 애틋하고 눈길을 끄는 힘이 있었다.


“희귀병, 흔한 병이 아니라 희귀병이 필요한데 … "


민서는 희귀병에 걸린 사람들의 사연을 읽으며 최대한 덜 알려진 희귀병을 찾았다. 이미 치료제가 많고 사람들이 잘 아는 병이 아니라 희귀병이어야 사람들을 쉽게 그리고 오래 속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너무 허약해지거나 아픈 병이면 돌아다니다 걸릴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돌아다닐만해 보이면서도 치명적인 것처럼 보이는 희귀병이어야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희귀병에 대한 정보를 찾아 웹사이트 이곳저곳을 떠돌던 민서의 손가락이 한 군데에서 멈췄다.


[잡담] 불행을 파는 가게 본 적 있음?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었다. 누가 봐도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어그로 성 제목. 평소라면 코웃음을 치고 클릭도 안 할 정도의 유치한 제목이었지만 민서는 지금 불행이 간절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민서는 커뮤니티 글을 클릭했다.


[난 봤음. 우리 동네에 있음.

말도 안 되는 인스타 감성 카페인가 하고 봤는데 진짜 불행을 파는 곳이었음.

주인이 막 화분에 물 주면서 들어오라고 하고 메뉴판도 보여줌.

ㅅㅂ 불행을 카드로 살 수 있대 ㅋㅋㅋ

진짜 무슨 개소린가 싶지? 근데 진짜 우리 동네에 있음ㅋㅋㅋ ]

댓글 1 : 주작도 정도껏 해야지 …

댓글 2 : 불행을 누가 사ㅋㅋ 그것도 카드로 ㅋㅋㅋ

댓글 3 : 컨셉 잘못 잡았네. 곧 망할 듯.

댓글 4 : 예술 전시 공간 그런 거 아님? 이상한 컨셉 잡아서 행위 예술 하고 그런 거.


“이게 뭔 개소리야 … “


커뮤니티의 글과 댓글을 읽으며 민서는 코웃음을 쳤다. 불행을 파는 가게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비웃는 댓글들 사이 스크롤을 내리던 민서의 눈을 잡는 글이 하나 있었다.


댓글 9 : 나도 봄. 호두동 아님?


말도 안 되는 글에 한 명의 동조자가 더 나타났다. 심지어 구체적인 위치까지 쓰여 있는 댓글이었고 호두 동이라면 민서의 집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는 동네였다. 진짜 일리는 없지만 만약 진짜라면, 지금 민서에게 꼭 필요한 가게였다. 민서에게는 불행이 필요하니까.


“호두동에 가보기나 할까?”


여느 때와 같이 가게 앞 화분들에 물을 주던 춘이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바깥쪽 골목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춘은 오늘도 화려한 로브를 찰랑거리며 몸을 홱 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춘이 따뜻한 물을 끓이고 찻잎을 꺼내 차주전자에 넣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었다. 차 향이 가게 안에 퍼질 때쯤, 가게 문이 딸랑하고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세상에, 진짜 있네 … “


낮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들어온 민서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가게를 둘러보았다. 카페 카운터에 서 있는 사장만이 조금 화려할 뿐 가게 내부는 평범한 카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기… 여기가 정말 불행을 파는 가게인가요?”


민서가 카운터 가까이로 와 조심스럽게 묻자 춘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불행을 사러 오셨나요?”


춘은 민서에게 준비했던 차를 내밀고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쭈뼛쭈뼛 카운터로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차 향이 더욱 진해졌고, 민서는 금세 그것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재스민차라는 것을 알았다. 말도 안 되는 가게와 상황, 마치 자신이 올 것을 알았다는 듯이 준비된 차까지, 민서는 눈앞의 춘이 마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는 화려한 춘의 패션과 뚜렷한 이목구비도 한몫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마녀라는 생각이 들자 선뜻 민서는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동화 속 마녀의 집에 들어온 헨젤과 그레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이런 마녀의 집에 찾아온 게 맞는 걸까, 불행은커녕 이 자리에서 바로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하지만 춘은 무표정으로 민서를 잠시 바라보더니 카운터 한쪽에 꽂혀있던 메뉴판을 내밀었다.


“부… 불행 메뉴판?”

“보고 여기서 고르셔도 되고, 특별히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면 구해드려요.”


[ 오늘의 불행 (개별 판매) ]

- 구글에 내 이름 검색했을 때 악플이 보임 : 5,000원

- 기다리던 택배가 분실 : 10,000원

- 친구가 나를 욕하고 다닌 걸 알게 됨 : 20,000원

- 목소리가 갑자기 나오지 않음 : 5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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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지는 않지만 절대 나을 수 없는 희귀병에 걸림 : 500,000원


‘내가 찾던 거다!”


메뉴판의 불행들을 쭉 읽던 민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역시 마녀가 맞는 건지, 맨 마지막칸에 민서가 꼭 필요한 불행이 있었다.


‘헉, 근데 50만 원? 너무 비싼데 … ‘


다른 불행들은 다 몇천 원, 몇만 원인데 민서에게 꼭 필요한 그것만 50만 원이었다. 최근 며칠간 후원을 통해서 돈이 좀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 월세도 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를 이런 상황에서 50만 원을 쓴다는 게 맞는 걸까, 민서는 메뉴판을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카드 할부도 됩니다.”


그때 마치 민서의 마음이라도 읽은 듯 춘이 대답했다. 불행을 카드 할부로 사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민서의 귀에는 마녀가 자신을 홀리는 목소리로 들렸다. 민서의 속마음을 읽고 홀리기 위해 한 말. 어차피 이 불행을 사서 라이브와 영상을 하면 또 후원이 들어올 테고 희귀병이라고 하면 더더욱 많이 들어올 것이다. 이 며칠간 번 돈이 이미 몇십만 원인데, 50만 원쯤은 금방 갚을 수 있을 터. 민서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메뉴판 가장 맨 마지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아프지는 않지만 절대 나을 수 없는 희귀병 살게요. 하… 할부로.”

“정말 이걸로 결정한 거죠? 우리 가게는 환불은 안됩니다.”

“이게 진짜로 되기만 한다면 절대 환불 같은 거 안 해요. 하지만 사기라면 바로 경찰 끌고 와서 이 가게 다 엎어버릴 줄 아세요!! 제… 제가 유명한 유튜버예요! 사기꾼 가게라고 다 소문내고 하는 것 정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급하게 쏟아낸 민서의 말에 긴 머리를 넘기던 춘이 행동을 멈추고 민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민서는 모든 말이 목구멍 안으로 쏙 들어간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멈추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새까만 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민서는 예전에 쇼츠에서 봤던 ‘세상에서 가장 검은 블랙’ 이 떠올랐다. 모든 빛을 흡수해서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블랙홀 같은 블랙. 춘의 눈동자가 그랬다. 모든 빛뿐만이 아니라 민서의 목소리까지 흡수하는 듯한 그 눈동자는 이내 가늘게 접히며 민서에게 대답했다.


“손님이 원하는 그대로 이뤄질 거예요, 반드시.”


날카로운 말과 함께 춘이 민서의 손에서 메뉴판을 뺏어갔다. 그리고 카드를 내라는 듯 손을 내밀었고 민서는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준에게 내밀었다.


“아, 잠깐만요!”


춘이 카드를 긁으려던 그때 민서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춘의 손과 카드를 덥석 잡고서는 물었다.


“근데 제가 산 희귀병이 그래서 뭐예요? 증상이나 뭘 알긴 해야 제가 써머… 대처를 하잖아요. ”

“결제하고 가게를 나가서 운화병원 심재민 교수를 찾아가면 말해줄 거예요..”

“뭐야, 진짜 병원 가서 나오는 그런 희귀병이에요? 마.. 말만 그런 게 아니라?”


당황한 민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춘은 민서의 손을 지긋이 밀어내고서는 카드를 그대로 포스기에 긁었다. 그리고서는 다시 민서의 손에 돌려주며 웃으며 대답했다.


“손님이 원하는 거 그대로 이뤄준다니까?”


춘의 목소리는 상냥했고 눈은 웃고 있었지만 손은 마치 얼음을 쥐고 있는 듯 차가웠다. 민서는 준에게 잡혀 있던 손을 빼내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뭔가 큰 일을 친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도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왕 저지른 거 제대로 해야 했다. 민서는 차가워진 양손을 꼭 쥔 채 뒤를 돌아 가게를 나섰다. 문을 닫고 유리창 너머로 민서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춘은 그 뒷모습을 무표정으로 끝까지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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