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 어디야~?"
한껏 올라간 목소리. 핸드폰 너머 엄마의 목소리 톤이 솔 이상 올라갔을 때는 밖에 있거나, 누군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퇴근하고 집에 있어요."
"그래, 그럼 추석 때 했던 그 거, 당장 집으로 좀 보내라. 여기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여가지고 고스톱만 치고 술만 먹으니까 심심해해서 그것 좀 알려줘야겠다."
"아이고, 알았다. 당장 보내드릴게."
엄마의 뒤에서 '잘 지내나' '그기 뭔데 그래, 당장 보내라' 하는 낯익은 목소리들이 함께 들려온다. 몇 번 더 당장 보내라, 알았다, 그래 일요일에 해야 한다, 알았다 하는 이야기가 반복되고서야 전화가 끊겼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방 한 구석에 꽂혀있던 박스를 꺼냈다. 엄마가 말한 추석 때 했던 그것, 바로 루미큐브이다.
작년 추석 때 우리 가족은 다 같이 가평으로 여행을 갔다. 큰 펜션을 빌리긴 했지만 워낙 대가족인지라 이동도 쉽지 않고 엄마아빠의 체력문제도 있으니 숙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게 뻔했다. 숙소에 모여서 뭐 할지도 뻔했다. 내내 TV를 틀어놓고 몇 명은 TV를 보고, 몇 명은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몇 명은 자거나 하겠지. 특히나 엄마는 손주들을 좀 보다가, 구석에서 자다가, TV를 좀 보다가, 다시 잠에 들어 혼자 조용히 앉아있을 게 분명했다.
엄마에게 새로운 취미를 주려 시도했던 적이 몇 번 있다. 내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젊었을 적의 엄마는 대외적이고 취미도 많은 사람이었다. 아파트 통장을 하면서 동시에 합창단 단장도 하면서 전국을 누볐다. 틈틈이 책도 많이 읽었고 뜨개질도 아주 잘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눈이 침침하니 뜨개질을 할 수 없고,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으니 합창단도 할 수 없었다. 기존에 가졌던 취미들을 할 수 없게 된 이후로 엄마는 새로운 것을 더 이상 배우지 않았고 집에서 TV만 보곤 했다.
엄마의 핸드폰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아빠가 핸드폰을 바꿀 때 엄마도 같이 바꿔주려 해도 절대 바꾸지 않는다. 지금 핸드폰과 똑같은 화면에 똑같은 위치로 되는 거고 기계만 새 걸로 쓴다는데도 새로운 걸 받으면 할 수 없다며 바꾸지 않으려 한다.
채색을 하는 드로잉북을 보내드려보기도 하고, 주변 문화센터에서 하는 수업을 찾아 보내드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다 엄마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 이런 건 못한다, 못 배운다, 해도 소용없다가 엄마의 말이었다. 아빠는 그래도 스마트폰의 기능을 익히고, 인터넷 쇼핑도 종종 하시는데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물론 꼭 새로운 걸 배우고 익혀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새로움이 없어진 엄마의 삶이 너무 단조롭고 무료해진 것만 같아 걱정이었다.
게임을 가져간 건 사실 엄마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조카들도 오는데 다 같이 뭔가를 할 수 없을까 하다가 집에 있는 게임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닌텐도와 마리오카트도 챙기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드게임도 챙기고, 가장 쉽게 즐길 수 있을 거 같아 루미큐브도 챙겼다. 예상대로 첫날 다 같이 모여 바비큐 고기를 굽고 술 한잔씩을 걸치고 나니 슬슬 각자 자리로 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술도 마시지 않아 어느새 구석에 이불을 싸고 누웠고, 배가 부른 조카들도 각자 핸드폰을 들고 자리를 떴다.
"나 루미큐브 가져왔는데, 한 판 할래?"
언니들과 동생은 게임을 알고 있을 테니 이야기를 던졌고, 다들 술만 먹는 것보단 나으니 같이 하기로 했다.
"엄마 아빠도 해볼래?"
역시나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아빠는 일단 너네 하는 것 보고 라며 관심을 보였다. 그럼 형제자매들끼리 먼저 해볼까 하고 자리를 잡던 차에 고등학생이 된 조카가 루미큐브를 좋아한다며 합류했다. 핸드폰만 보며 따로 놀 줄 알았던 조카가 합류하니 아빠와 엄마가 더욱 흥미를 보였다. 우리 손주,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하며 손주를 응원하며 자리를 잡았다. 윷놀이도 고스톱도 좋지만 다 같이 모여 새로운 게임을 하니 다들 얼굴에 새로운 생기가 돌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데면데면했던 올케도 합류하고, 유심히 바라보며 룰을 익힌 아빠도 게임에 합류했고, 그러자 엄마도 드디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는 건데?
다 같이 몇 번만 해도 좋겠다 생각하며 가져간 게임이었는데, 2박 3일 내내 시간 날 때마다 온 가족이 함께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게임에 드디어 참여를 했다. 새로운 것에 늘 거부감을 보이던 엄마가 새로운 규칙을 익히고 게임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그날의 뿌듯함이란. 여행이 끝나고 엄마와 아빠에게 게임을 가져가시라고 했는데 또 시골에는 같이 할 사람이 없다며 극구 거부하셔서 내가 다시 들고 왔다. 설에나 또 들고 가서 같이 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게임을 집으로 보내라며 전화가 온 것이다. 분명 동네 친구분들과 추석 때 자식들과 함께 여행 간 이야기를 자랑 삼아 하다 나왔겠지.
엄마의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편의점으로 가서 택배를 접수했다. 보내드린다고 해서 당장 하실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걸로 인해 엄마가 친구분들과 좀 더 자주 만나고, 함께 새로운 게임을 한두 번이라도 한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늘 막연하게 엄마 앞을 막고 있던 '새로움'이라는 걸 한번 부쉈으니까. 그다음 두 번, 세 번 부수는 건 더 쉬워질 것이다. 이번 설에는 새로운 게임을 들고 가서 두 번 세번 다시 두드려볼까, 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