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새해의 시작은 비움, 그리고 채움

by 재완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다. 일을 할 때는 당연하거니와 평소에도 머릿속에 몇시부터 몇시까지 뭘 하고, 순서대로 어떻게 해야할 지 계획을 세운다. 여행을 갈 때에는 엑셀로 스케쥴을 정리하고 시간과 동선을 짠다. 내가 어떤 순서대로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 가 머릿속에 있어야만 마음이 편하다.


반대로 계획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할 일이 없다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쇼츠만 본다. 2025년의 12월은 대부분 그렇게 보냈다. 2026년은 그렇지 않기 위해서 지난 일주일간 열심히 올해의 목표를 만들고 목표를 구체화 한 계획을 짰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버리기' 이다. 청소를 하고 나면 개운해지듯이 아무 쓸모를 갖지 못한 채 쌓여만 있는 짐들을 버리고 나면 개운함과 함께 그 곳을 새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든다. 올해는 이사도 계획하고 있어서 목표 다이어리에 '버릴 것들' 페이지를 만들고 리스트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큰 짐들만 생각이 나더니, 차근 차근 집안 곳곳을 둘러보니 다 버리고 (새로 사고 싶은) 것들 투성이다. 정신차리고 다시 버려야할 것들을 적어본다. 적어놓지 않으면 까먹고 또 그대로 이고지고 살 것이다.


첫번째로 지난 주는 책상 주변에 있는 것들을 버렸다. 첫 타깃은 연필꽂이.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주로 쓰다보니 펜은 거의 쓰지 않는데도 아주 예전부터 쓰던 샤프, 지우개, 여기저기서 받은 사은품 펜들이 한가득이다. 정말 최소한의 색깔 펜들만 두고서 싹 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수많은 펜들이 서로를 짓누르며 꽂혀있던 연필꽂이가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 다음 타깃은 정말 오래 묵은 '명함첩'. 사회 생활이 15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받은 명함만 한 바구니 가득이다. 도대체 누구인지 어디서 받았는지 기억도 안나는 명함도 한가득이지만 그냥 버리기는 찝찝해서 하나씩 찍어 명함 앱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여전히 이 회사를 다닐까? 이 사람은 아직 있을 것 같아. 이 사람은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니 오히려 명함 앱에 안넣어도 되겠다. 아, 이 회사는 없어진 회사구나. 명함을 하나하나 보며 잊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200장 정도를 저장하고, 아직까지 업무적으로 더 연락할 것 같은 사람들의 명함만 남겨두었다. 명함 정리만 한시간 넘게 걸렸지만 옛 생각도 나며 재밌는 시간이었다. 명함통을 2개를 쓰고도 넘쳐서 튀어나와있던 것이 한통의 반도 안되는 양만 남았다.


새 것을 샀지만 대형 페기물 신청을 해야해서 미루고 있던 것들도 다 버렸다. 10년 넘은 캐리어, 사이즈를 잘못 산 쓰레기통, 매트리스와 셋트가 아니었던 이불까지. 오래된 게임기와 핸드폰은 어플로 팔았다. 잘 안입는 옷들은 기부를 하기 위해 박스에 한데 모았다. 이 집에 오래 살면서 점점 다이소 수납장이 늘었었는데, 이제 수납장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비웠다.


그런데도 아직 버릴 게 한가득이다. 오래된 다이어리와 아이디어랍시고 끄적인 이면지들, 뜨개질을 해보겠다고 샀던 털실들,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샀던 마카들, 여기저기서 모았던 스티커, 식집사가 되겠다며 모은 화분들,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과 샘플, 그리고 내 책 재고. 독립출판을 뭘 이리 많이 찍었는지.


'버릴 것들' 페이지에 모두 쓰고, 버리고 리스트를 지운다. 올해는 이것을 계속 반복할 생각이다. 미니멀리스트가 꿈은 아니라 버리고 비운 곳에는 새로운 것이 금세 차겠지만, 집이 아닌 나를 채우는 것들로 최대한 채우고 싶다. 나를 채우는 것이 어떤 것일지 찾아가는 것도 올해의 목표지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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