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앞으로 48번이 남았다.

by 재완

지나치게 추운 한 주였다.


위아래로 보온 내복을 입고 그 위에 기모로 된 바지와 후드티를 입고, 다시 또 그 위에 롱 패딩을 입어도 차가운 공기가 옷 틈새로 파고들고, 가리지 못한 눈과 코를 때렸다. 이정도면 재난 상황으로 선포하고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일주일 내내 회사 사람들과 사무실에서 궁시렁 거렸다. 막내에게 몰래 건물 난방기를 고장내라는 임무도 내렸다. 건물 난방기가 어디있는 지 몰라서 임무는 실패했지만.


이런 날이면 유독 더 간절해진다.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혹은 내가 원할 때 일어나서 출근하거나 일을 해도 되는 일. 많은 직장인이 꿈꾸는 그런 상상을 나 역시도 꿈꾸고 있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이불 속에 한껏 파묻혀있다가 느지막이 눈을 뜨고 이불로 온 몸을 꽁꽁 싼 채 일을 하거나, 해가 긴 여름 날에는 여유롭게 일찍 눈을 떠 커피 한 잔을 내리고 향을 음미하며 일을 시작하는 그런 모습.


문제는 그런 모습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지는 잘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장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내린 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지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사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긴 하다. 미디어 업계에서 일하면서 남의 콘텐츠들을 다루기만 하다보니 내 콘텐츠가 갖고 싶어졌다. 내가 쓰는 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이렇게 가끔 쓰고 있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작가가 될 만한 능력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점을 보러가도 그랬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이후 점을 보러갈 때마다 글을 써서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해 물어보는데 단 한곳도 글을 써도 되는 사주라고 해준 곳이 없었다. 부업으로 회사 다니면서 해도는 되지만 전업은 하지 말라는, 너는 그냥 회사 다닐 팔자라는 말만 해줬다. 그런 말은 신기가 없는 주변 어른들도 늘 하는 말인데.


점쟁이들의 말을 다 믿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점이라는 게 내가 듣고 싶은 말 들을 때까지 보러가는 거지 않는가. 그저 글에 관해서 나는 점쟁이들의 말을 믿는 게 아니라 나를 못 믿는 것이다.


쓰고 싶은 것을 가끔 끄적이면 재미는 있지만,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글일 지, 사람들이 내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 건지, 그 메시지를 줄 만큼 나는 깊은 고민과 통찰을 했는지,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회사를 그만두어도 될 정도의) 돈이 될 만한 글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쓰는 주간노가리는 뭐라도 써봐야지 될 지 안될 지 알 수 있으니 쓰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도 명확하지 않아서, 나와 내 삶,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찰을 목적으로 매주 뭐라도 써보자 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 나에 대한 관찰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도 못하고 있지만. 이제 겨우 4주차니까 나를 좀 더 들여다보고 내 주변의 이야기를 꺼내야지. 최소한 52주 간은 주간 노가리를 쓸 테니까. 아무리 게으르고 나약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지키겠지, 나 자신아.


52번의 글을 쓰고 나면 불명확한 뭔가의 형체는 보이겠지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오늘도 억지로 글을 써본다. 해가 긴 여름 날 여유롭게 눈을 떠서 커피를 내리는 내가,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 지 어떤 것을 쓰고 있을지가 좀 더 명확하게 보이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남은 48번은 조금 더 고민하고 관찰하며 써야지 하고 1월 한달 내내 다짐만 되내여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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