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라는 질문에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는다. 회사가 싫다거나, 누가 날 괴롭힌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첫 일을 시작한 해로부터 따지자면 올해로 17년차, 그리고 7번의 이직을 거치며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요, 일도 다 거기서 거기다 라는 마음으로 그럭저럭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너무 큰 스트레스도 받지 않으려고 하고, 당장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물론 요즘같이 추운 날의 아침에는 종종 하긴 하지만)
싫지 않다고 해서 좋다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내게 큰 도움(=안정적인 월급)을 주고 있으니 감사히 생각하며 적당히 내 개인의 삶과 회사의 삶을 공존하며 살아가려 하고 있지만 회사 안에 내 행복이나 기쁨이 있지는 않다. 회사에서도 분명 깔깔 거리며 웃기도 하고 재밌는 일도 일어나긴 하지만 그 것이 내 인생의 행복인가, 라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아니오라는 말이다.
며칠 전 친구와 술을 마셨다. 정말 오랜만의 평일 저녁 술 약속이었는데, 영하 12도의 날씨였다. 이런 날에 꼭 친구를 만나야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렵게 일정을 맞춘 저녁이라 퇴근 후 꽁꽁 싸매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나처럼 모두가 어렵사리 잡은 모임이 가득했던 걸까,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차있었고 다들 어찌나 반가운건지 옆자리 뒷자리 앞자리 테이블의 소리가 다 섞여 가게 안에 떵떵 울렸다. 우리도 한껏 목소리 톤을 올려 대화를 이어 나갔으나 약 삼십퍼센트 정도는 듣지 못한 채 추측해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했다. 나는 그녀를 종종 '대한민국에서 이 업계를 끌어가는 사람'이라고 놀리는데, 그 정도로 그녀는 일을 열심히 했고 자신의 대다수의 시간을 일에 쏟아부었고 그 만큼을 인정받아 승진도 빠르게 했다. 나에게는 아니었지만 친구에게 일은 행복이었다. 스스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일에 지쳐 힘들어 보이지만 일의 결과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 나는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지난주 월요일 밤, 머리가 아파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자기 전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최근에 가끔 아이패드로 캐릭터들을 그려보고 있는데 이런 소재로 그려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전기장판도 켜놓고 침대에 누웠었는데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고 아이패드에 아이디어 기록을 남겼다. 당장 그리기는 어려우니까 일단 이런 제목으로, 이렇게 구성을 해볼까. 너무 못그린 그림이고 소소한 아이디어라 누가 봐주기나 할 지 모르겠지만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순간 동안 분명 나는 행복했다. AI 에게 그림 구성을 부탁하기도 하고, 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떠올리며 계속 끄적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아이디어는 모두 회사생활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회사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는 않지만 회사 생활을 베이스로 한 아이디어를 내며 나는 행복을 느꼈다. 회사는 행복 그 자체는 되지 못하더라도 행복을 위한 거름은 되어주고 있다. 회사는 여전히 거기서 거기이고, 월요일 아침 9호선에서부터 출근하기 싫어를 외치겠지만 이 거름으로 내 행복이 조금 더 크고 튼튼하게 여물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내일도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