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호선 급행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 아침 9시와 저녁 6시의 9호선은 늘 감탄의 연속이다. '어떻게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줄 서 있는 사람이 많지' 하고 감탄하고, 전혀 틈이 없어 보이는데 사람이 계속 밀고 들어와서 감탄한다. 알고 보면 인간도 슬라임처럼 찌그러졌다가 원상 복귀되는 거였을까, 제발 더 밀지 않았으면 하는데도 누군가는 밀고 어딘가에서 틈은 나타나서 나는 찌그러져 들어간다.
다닥다닥 붙어서 있다보니 의도치 않게 사람들의 핸드폰 화면을 보게 되는 일도 많다. 꼼짝달싹 못하게 꽉 끼어있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꼼지락꼼지락 팔을 움직이고 들어올려 핸드폰을 코 앞으로 꺼낸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닭살돋는 카톡부터 어제 못본 드라마, 유튜브까지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신선했던 건 텔레그램 주식방이었다. 카카오톡과는 다른 배경화면에 뭔가 주식 정보같은 것들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핸드폰 주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빤히 그 정보를 보고만 있었는데 직업병인지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주식 범죄 영화의 한장면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건전한 주식 스터디 방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지 못한 채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게 되는 건 가끔은 재밌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힘들다. 끼어가는 30분 동안 '제발 그만 좀 밀어! 제발 그만 좀 타!' 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걸 꾹꾹 참으면서 견디는데 지난주 이 상상을 현실로 이뤄준 일이 있었다.
그날도 9호선은 꽉 차있었고 사람들은 빈틈을 파고들며 끝없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까지 찌그러지려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때 누군가 작지만 아주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왜 자꾸 밀어."
짜증 섞인 목소리는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9호선의 인간 밀침은 한 사람의 파워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그 정도의 짜증 섞인 말들은 늘 있는 터라 오늘도 사람들이 화가 많구나, 하고 넘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귓청을 찌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 이 씨발년아! 네가 먼저 밀쳤잖아!"
지하철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짜증 섞인 말을 중얼거렸던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이내 받아쳤다.
"니가 나를 밀었잖아!"
"뭐 이 썅년이, 네가 밀쳤잖아!"
"아니, 네가 그쪽에서 나를 밀었으니까-"
"내가 뭘! 어디서 미친 계집년이 목소리를 크게 하고 지랄이야!"
"야, 그 거 지금 너잖아."
"뭐 이 씨발년아!"
여자는 말 한마디 마디마다 욕을 섞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경찰서를 가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오갈 때도 여자는 쌍욕을 빼지 않고, 목소리의 크기도 줄이지 않았다. 지하철 내의 그 누구도 두 사람을 말리거나 조용히 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말리기에는 우리 모두가 전혀 움직일 수 없을만큼 꽉 끼어있었고,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가는 여자의 쌍욕이 나를 향할 것만 같았다. 결국 먼저 짜증을 낸 여자가 항복하고 나서야 지하철은 조용해졌다. 안타까운 점은 여전히 지하철은 꽉 차있는 상태라 항복한 여자는 어디로 피하지도 못하고 고개만 반대쪽으로 팽 돌린 채 버텨야 했다는 점이다.
그 모습을 보며 '그만 좀 밀어! 제발 다음 거 타!' 라고 소리지르고 싶다했던 내 상상이 쏙 들어갔다. 소리를 질러봤자 사람들은 듣지 않을 거고, 여전히 밀치고 들어올거고, 나는 그냥 소리지른 미친년이 되어 한가운데에 끼어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할 것이다. 으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절대 하지말아야지.
다음역에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나갈게요' 라고 말하면서 그 여자에게 부딪히지 않으려 애쓰며 나갔다. 나 역시도 여자의 앞을 지나가며 부딪히지 않으려 최대한 허리를 꺾어 비틀며 생각했다.
그래도 역시 미친 년으로 사는 게 편하구만. 다 피해가네.
물과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홀로 서있는 여자를 쳐다보며 나는 거짓 부러움을 중얼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