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전세탈출선언

by 재완

올해 내 목표는 서울에 아파트를 사는 것이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며 청약과 갭투자 이야기를 한참 해주던 어릴 때는 실컷 흘려듣다가 40대가 넘은 이제서야 내 집 마련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집 마련이 아니라 서울에 아파트 마련이다. 나에게 있어 '내 집을 산다'는 것과 '서울에 아파트를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삼십대에서 내 집은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내가 꿈꾸던 집은 서울이 아니었고, 아파트가 아니었기에 나는 청약이나 대출, 부동산 정보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늘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마지막 회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회사를 그만두면 제주도로 내려가서 오래된 시골집을 사야지, 하고 생각했다. 연고도 없는 제주도가 너무 터무니 없다면 부모님이 계시는 포항이나 이모가 있는 동해시로 가야지 하고 세컨드 지역까지 생각했다. 바닷가 가까이에 위치하고, 내가 먹을 정도의 깻잎과 토마토를 심을 수 있는 텃밭이 있고 적당히 사람들이 오가는 골목 길에 위치한 아담한 집, 그게 이삼십대의 내가 꿈꾸던 내 집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회사를 여섯번 그만두고 일곱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고, 서울에 전세를 살고 있다. 바닷가로 내려가 사는 꿈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에 해야지' 라며 내 집 마련을 계속 미루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이럴 거면 일단 서울에 집 하나 사놓고, 나중에 진짜 내려갈 때 그걸 팔고 내려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내 집 마련'이 아니라 '서울에 내 아파트 마련'으로 머리가 돌아섰다. 청년 대출은 이미 늦었지만 생애최초 대출이 있으니까 그걸 최대한으로 땡기고, 집 값이 절대 내려가지 않을 서울에 마련해야 한다. 바다 대신 인공 폭포가 있는 대단지 아파트를, 텃밭 대신 다용도실이 있는 아파트를, 골목길 대신 지하철역과의 거리를 알아봐야 한다. 하필이면 마음 먹은 지금이 부동산 뉴스가 하루에도 몇번씩 나오는 시기라 알아보면 알아볼 수록 한숨만 나온다. 몇년 전 다니던 회사에서 팀장님이 알려준대로 청약을 넣고 매매를 했으면 더 좋은 지역에 내 아파트 마련을 했을텐데, 그럼 대출금을 벌써 10년은 갚았을텐데, 하며 다양한 후회와 함께 매일 부동산 어플을 들락 거린다.

쓰고보니 우울한 것 같지만 사실 집 값 말고는 딱히 우울하지는 않다. 점 찍어놓은 아파트 단지는 인공 정원도 있지만 산이 가까워 주말마다 오르기 좋고, 역에서 아파트 단지까지 가는 길에는 시장이 있고, 도보 20분 내에 친구도 살고 있다. 가격만 좀 더 내려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막연히 생각만 했던 내 집 마련이 오히려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바닷가 앞 내 집 마련은 상상 속에서만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아파트 매매는 엑셀 표 안에 구체적으로 정리하다보니 '내가 진짜 내 집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이 현실적인 대출과 계획과 실행이 바닷가 앞 내 집 마련의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라는 그림도 그려진다. 서울 아파트를 보고 있지만, 제주도 매물만 소개하는 부동산 어플도 같이 깔았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하고, 나 역시도 아쉬움은 많지만 이게 내 속도니 어쩔 수 없다. '그 때 청약하고 알아보고 살 걸' 이라고 해도 그 때 당시의 내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내 속도에 맞춰 마련하다보면 서울의 아파트도 내 집이 되고, 바닷가 앞의 아담한 집도 언젠가는 내 집이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부동산 어플을 들락날락 거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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