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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Jul 22. 2022

12시 땡 하면 울리는 카톡과 전화

음모론이 판치는 개봉 시즌

광고대행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이직 자리를 찾으면서 내가 세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워라밸과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더이상 저녁먹고 회의하고 편집실 가는 일정이 당연한 그런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선택한 곳이 영화 투자배급사였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영화가 개봉이 먼 시점에서는 저녁과 주말이 보장되는 쾌적한 삶이었고 개봉이 다가오게 되면 그간 즐긴 저녁과 주말을 모두 헌납해야했다.



사실 나는 그런 점이 좋았다. 영화라는 컨텐츠 자체가 사람들이 쉴 때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바쁠 땐 바쁘고 쉴 땐 쉴 수 있는 적절한 라이프 밸런스가 내게 잘 맞았다. 밤 12시에 울리는 카톡과 전화만 아니라면.




영화는 적게는 수억부터 많게는 수백억이 투자되고, 수많은 영화들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채 마이너스가 되어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개봉 시기에는 정말 모든 사람들이 예민하고, 숫자 하나, 리뷰 하나에 일희일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팀장님은 늘 ‘일희 일비 하지 마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본인은 오전 10시 스코어에 좌절했다가, 오후 5시 기준 스코어에 기뻐했다가 하며 늘 일희일비했다.



영화는 개봉 전 예매율을 굉장히 중요하게 체크한다. 예매율이 바로 첫날 스코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보통 일주일~열흘 전부터 예매율을 지속 체크하고, 예매율이 올라가는 상승세와 퍼센트까지도 분석을 하는데 거기에 따라서 가장 많이 압박을 받는 것이 마케팅이었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서, 광고가 많이 안되어서, 혹은 리뷰가 별로 없어서, 리뷰 점수가 좋지 않아서 예매율이 오르지 않는다며 매일 매일 압박이 들어왔다.



그래도 예매율에 대한 압박은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었다. 예매율은 보통 아침에 체크하니까. 시사하고 난 이후 올라오는 리뷰에 대한 것들, 개봉하고 난 이후 스코어와 평점에 관한 것들이 가장 관리하기 힘들었다. 저녁 시사는 보통 7시 정도에 하기 때문에 리뷰가 올라오는 시간이 밤 10시 ~ 11시가 넘어서였고, 개봉하고 난 이후 스코어와 평점은 밤 12시를 기점으로 움직인다. 즉, 그 시간이 바로 리뷰와 평점을 확인하고 전화와 카톡이 쏟아지는 시간이었다.



지금 리뷰 안좋은 말이 너무 많은데
이거 누가 우리 공격하는 거 아니니?

지금 평점 너무 낮은데
이거 덮을 다른 이슈 없니?

지금 스코어 이것밖에 안찍혔는데
내일 뭐 좀 더해야하는 거 아니니?


등등, 12시를 기점으로 나오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해결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연락이 쏟아지곤 했다. 당연하게도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스코어가 별로 안나왔다고 해도 이벤트를 기획하건 광고를 더 집행하건 하는 것도 다음날 출근 시간에 진행해야 하는 업무였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하나, 매체사가 연락이 안되는데...


그 중에서도 리뷰에 관한 게 가장 힘들었다. 안좋은 리뷰가 올라와도 내가 삭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체사 혹은 플랫폼에 연락해야하거나 혹은 아예 삭제할 수 없는 리뷰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밤 12시, 대부분이 술도 마셨고 감정이 이성을 앞지르는 시간이라 ‘경쟁사가 우리 영화를 음해하고 있다’라거나, ‘이런 리뷰가 올라오는 사이트는 다 믿을 수 없으니 그 사이트에 우리 영화 정보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게 해달라’거나, 하는 식의 연락이 쏟아지곤 했다. 모 감독님은 극장 사이트의 평점테러에 충격을 받아 앞으로는 자신의 영화를 그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그 시간에 말해도 그 시간에 해결 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에 토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꼭 12시가 넘어서 토로하곤 했다. 시사가 끝나고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혹은 회식 장소에서 나는 입으로는 술과 안주를 주문하고 손으로는 내일 내가 출근해서 해야할 대책들을 카톡으로 대답해야 했다. 지금 밤 12시에 할 수 없고 다음날 묻고 대답하고, 다음날 정리해야 하는 것들을.


범죄도시2의 흥행 이후 많은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고 있다. 기대작들도 한껏 개봉하면서 시사와 리뷰 후기들이 속속 올라오는 것을 보니 과거 내가 시달렸던 것들이 떠올랐다. 어떤 영화들은 내가 담당자였다면 재밌었겠다, 싶은 것도 있지만 '아, 내가 담당자였다면 등 뒤로 소름이 돋는다' 싶은 영화들도 많다. 게다가 매주 대작이 개봉하는 경쟁상황이 이렇게 치열한 시장이라면 담당자들은 이 더위에 들들들 볶이고 있을 것이 눈에 선하다. 부디 모든 영화들이 원하는 만큼, 상처받지 않을 만큼 흥행에 성공하기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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