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일기. 엄마가 새로운 이름을 받아왔다
중학생 때 개명신청을 한 적이 있다.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30대 초반에 단명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엄마가 비싼 곳에서 돈을 주고 이름을 사온 것이다. 당시 엄마는 두 개의 이름을 받아와서 내게 고르라 했다. 하나는 유행에 맞춘 예쁜 이름, 하나는 중성적이지만 더 오래 살 이름이라고 했다. 한참 사춘기인 여중생에게 당연히 더 오래 살 이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고 나는 유행에 맞춘 예쁜 이름을 골랐다. 그리고 예쁜 이름으로 불릴 나를 상상하며 개명신청을 했지만 국가는 내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당시만해도 아주 심각하게 이상한 이름이 아닌 이상 개명신청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 수명이 짧다는 점쟁이 말 외에 평범했던 내 이름은 개명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가 받아온 비싼 이름들은 제대로 불려보지도 못한 채 장롱 깊숙한 곳에 고이 접혀 들어갔다.
2021년, 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가장 먼저 결정할 것이 바로 ‘필명’ 이었다. 30대 초반을 훌쩍 넘어 후반이 된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하지만 필명은 다른 것으로 쓰고 싶었다. 어떤 이름을 쓰면 좋을까 고민하던 그때 떠오른 것이 예전에 엄마가 받아온 그 이름들이었다.
수명이 아니더라도 이름은 분명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때 이름을 바꾸었다면 아주 작은 사소한 차이점일지라도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글을 쓰는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모습이길 바란다. 뛰어나지는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글을 쓰고 싶다. 논란이나 분란을 일으키기 보다는 가운데에서 고요하게,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공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엄마가 받아온 재완이란 이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