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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Sep 15. 2022

사춘기는 사십에 오는 건가봐

10대에도, 20대에도 겪지 않았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금 겪다니 

나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라는 노래를 싫어한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라는 가사가 너무 싫다. 물론 시대에 따라 나이가 가지는 의미가 달라지는 건 알고 있지만 고작 30살에 청춘이 멀어지고 비어가는 내 가슴에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는 가사가 싫었다. 서른이면 이제 시작인데 대체 왜 당장 죽을 것 같은 가사를 말하는 걸까. 



나는 스무살에서 서른살이 될 때 전혀 슬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무 느낌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열아홉살에서 스무살이 될 때는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고, 술을 마실 수 있다는 다른 점이라도 있었는데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될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나는 똑같이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일 뿐 특별히 달라진 점도 없었고, 스스로 달라져야할 점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삼십대 중반도 아닌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마음이 초조해지고 있다. 서른은 어리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마흔은 어디 가서도 어리다고는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서른은 회사에서 실수해도 아직은 봐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마흔이 회사에서 실수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할 것 같다. 서른은 아직 내 인생의 방향을 못잡아도 이해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마흔에는 내 인생의 방향을 이제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내 머릿속의 마흔은 이런 모습이다보니 요즘 나는 10대 중학생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 일에 있어서는 한치의 실수도 없는 완벽한 상사의 모습이고 싶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이고 싶다. 그래서 멋진 말만 하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 하고, 항상 정제된 말만 하려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스스로 자책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흔이 되면 뭘 이뤄놔야 할 거 같은데 그때까지 뭘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것도 스트레스이다. 서울에 집 구하는 건 불가능, 애초에 포기했고 그렇다면 마흔에 팀장이라는 직급이라도 달거나 (내가 싫어서 한번 박차고 나온 자리이면서도) 제2의 인생에 대한 준비라도 했거나 해야할 것 같은데 그 어떤 것도 준비되어있지 않다. 지금 이대로 흐른다면 마흔의 나도 지금처럼 전세집에 살면서 팀원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겠지. 그게 옳다 틀리다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뭘 하고 싶을까, 뭘 할 수 있을까. 아등바등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배워보고 써보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없다. 난 언제나 뭐든 적당히 잘 하는 편인데, 그 적당히가 항상 독이다. 아주 못하지도 않아서 버리기도 애매한데 아주 잘하지도 않아서 키우기도 애매한. 그런 적당함이 지금까지는 내 인생을 꽤나 수월하게 살아오게 해왔는데, 마흔 이후에는 독이 될 것만 같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사실은 다 생각이고 걱정이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십춘기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는 요즘 혼란스럽다. 점점 더 멀어져가는 청춘을 붙잡고 뭐라도 해야할 거 같은,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0대에도, 20대에도 겪지 않았던 질풍 노도의 시기를 지금 아주 세게 겪고 있어서 글도 잘 써지지 않는 요즘이다. 



브런치가 갑자기 내게 글은 꾸준히 써야하는 거라는 알람을 주길래 울컥 해서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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